도서 소개
“꿈을 포기한 나라 VS 꿈을 포기할 수 없는 나라”
다음 두 가지 상황 중 어떤 것이 더 나을까?
1.
*조금 늦게 일어났지만 오늘도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근을 했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더라도 차를 구입할 생각은 없다. 차에 따르는 온갖 세금과 비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출퇴근 시간은 여유롭고 딱히 ‘지각’과 같은 개념도 없으니 다행이라고나 할까.
*오늘은 회사로부터 승진과 연봉 인상을 제안받았다. 기분은 좋았지만 소득이 오름에 따라 발생하는 막대한 세금을 감당하느니 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 거절했다. 오후 4~5시쯤 퇴근하고 나면 배우자와 함께 각종 집안일을 처리하고 육아를 하기 바쁘다. 오랜만에 밖에 나가 가족들과 외식을 즐기고 싶지만 월 100만 원에 달하는 주택 임대료를 내기도 벅차 오늘도 집에서 끼니를 해 먹는다.
*감기에 걸린 것 같이 머리가 아파 진료를 받고 싶지만 나 같은 증상을 가진 환자는 병원에서 받아주지도 않는다. TV에서는 도박 광고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언뜻 대기업들이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합법적으로 재산을 상속한다는 뉴스가 보도된다. 이 나라에서 노력에 따라 정당하게 보상을 받고 신분 상승을 하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처럼 느껴진다.
2.
*평소에는 출근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오늘은 지각을 할까봐 급하게 택시를 탔다. 지금은 비록 어렵지만 때가 되면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차를 꼭 구입할 것이다.
*오늘은 회사로부터 승진과 연봉 인상을 제안받았다. 5년 동안 야근도 불사하며 성실히 일한 보상을 이제야 받는 것 같아 나 자신에게 뿌듯하다. 퇴근하고 나면 가족들과 함께 밖에 나가서 푸짐하게 저녁 식사를 해야겠다. 지금은 전세자금 대출을 통해 임대받은 집에서 빠듯한 형편으로 살지만 언젠가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감기 증세가 있어서 퇴근하면서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코로나19 검사도 받았다. 불황이라고는 하지만 맛집 앞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TV에서는 재벌가가 납부해야 할 상속세가 10조 원에 달한다는 뉴스가 나온다. 이런저런 불만들로 세상은 떠들썩하지만 그래도 나의 노력이 인정받을 수만 있다면 이 나라에 희망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1번과 2번 상황은 각각 스웨덴과 한국에서 일하는 평범한 노동자의 일과를 묘사한 것이다. 두 나라가 가진 장ㆍ단점이 뚜렷한 만큼, 두 나라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가치나 바라보는 미래는 확연히 다른 것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복지국가를 무조건 이상적으로 바라보고 또 그들 모델을 그대로 따르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스웨덴에 직접 거주한 경험과 다양한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쓰인 《행복한 나라의 불행한 사람들》은 복지강국으로 꼽히는 스웨덴이 어떤 현실을 겪고 있는지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리고 북유럽 모델이 과연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미래가 될 수 있을지 냉철하게 짚어본다.
스웨덴 국왕의 선언, “우리는 방역에 실패했다”
코로나19 대혼란으로 드러난 북유럽의 실상
코로나19는 그간 ‘선진국’이라 불리었던 나라들의 민낯을 드러냈다. 그중에서는 우리가 오랫동안 복지국가 모델로서 선망해왔던 북유럽 국가들이 있었다. 특히 스웨덴은 육아, 교육, 노후, 노동, 성평등 등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복지정책을 만들고 평등한 사회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를 겪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스웨덴은 중요한 모범 국가이자 반드시 따라야 할 모델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등장하면서 북유럽에 대한 환상은 깨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동양인이나 이주민에 대한 차별부터 불거지더니 느슨한 방역과 미흡한 의료역량, 과부하가 걸린 공공의료시스템이 계속 문제가 되면서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스웨덴은 ‘집단면역’이라는 초강수를 두면서 전염병에 취약한 노인 세대부터 먼저 희생시켰다는 비판을 받았고 결국 국왕이 직접 나서 전 세계 앞에서 방역의 실패를 인정해야 했다. 북유럽이 이 같은 혼란을 겪게 되면서 그들이 공유하고 있던 틀인 ‘보편적 복지국가’ 역시 도마 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낸 만큼 돌려받지 못하는 나라”
기회 없는 복지천국의 가난한 시민들
국가 예산으로 공공의료시스템을 운영하는 스웨덴은 작은 증세로도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한국과 달리 응급상황에서도 기본적인 대기시간만 5~10시간에 달할 정도로 고비용ㆍ저효율이 심각하다. 교육은 계층사다리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하고 있고 스웨덴 아이들의 학업성취도는 갈수록 떨어져 얼마 전에는 세계적인 수준에 비해 낮게 나타났다. 노령연금은 각종 소득세와 주거비, 필수 생활비를 제외하면 한 달에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이 17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고용보험도 국가가 아닌 민간의 것으로 실업의 위험에 취약하며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노동법의 보호 수준(고용보호지수)은 OECD 평균이나 한국보다 한참 뒤떨어진다.
이처럼 혜택이 기대만큼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복지국가는 ‘모든 근로소득에 성역 없는 과세를’을 표방하며 국민들에게 높은 조세부담률을 가중시킨다. 소득구간별로 촘촘하게 나누어 누진적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한국과 달리 스웨덴은 ‘서민증세’라 불러도 될 만큼 저소득층에게도 높은 세금을 부과한다. 부가가치세도 높기 때문에 실생활에 필요한 외식비, 주류비, 주차비, 미용비 등이 비싸고 무엇보다 주거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울러 스웨덴에서는 ‘세금달력’을 통해 옆사람의 연봉을 비롯한 소득 및 신용정보를 속속들이 감시할 수 있는데 이는 시민들이 서로 탈세범들을 신고하고 잡아내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 부의 기회가 현저히 줄어든 스웨덴 국민들은 그나마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부동산 투자나 도박에 빠져들고 있고 이로 인한 가계부채의 규모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우리끼리는 평등하다, 족벌가문만 빼고”
평등 정책의 이면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
스웨덴은 이민자들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고 성평등정책에 있어 다른 어떤 나라보다 앞서 있다. 동시에 노동소득의 격차가 크지 않고 학벌에 따른 차별이 거의 없다. 이 같이 외형적으로는 강한 평등 정책을 지향하는 것만 같은 스웨덴이 자산 격차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한다. 자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총자산 지니계수’는 자본주의의 종주국 미국보다 높고, 나라 전체 자산에서 하위 50%가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15%인 데 비해 스웨덴은 0%다.
스웨덴에는 재산세와 상속세가 폐지되어 세금 없이 막대한 자산을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부유층 가문이 있고, 할아버지의 부동산 대출이 손자에게까지 대물림되는 중하위 계층이 있다. 노동자들 사이의 ‘소득 격차’가 큰 한국과 달리 ‘자산 격차’가 큰 스웨덴에서는 부자가 불로소득을 통해 더욱 부유해지고 중산층ㆍ중하위층이 열심히 일할 만한 유인이 떨어지면서 더욱 가난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아울러 난민의 과도한 유입에 따라 스웨덴 국민들의 경제적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민자 혐오를 부추기는 극우정당의 인기가 치솟고 사회 통합에 위기가 오고 있다.
“과연 복지국가는 지속가능한가?”
스웨덴을 넘어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하는 이유
저자는 스웨덴의 역사와 경제를 살피며 복지국가의 근본적인 조건을 되짚고자 한다. 스웨덴 사민당 정부는 발렌베리그룹을 위시한 독점기업에게 기득권을 보장해주는 대신 그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강력한 복지국가를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스웨덴 대기업들은 본사를 해외로 이전시키고 복잡한 피라미드형 지배구조를 만드는 등 각종 편법을 사용해 고율의 세금 납부를 피했다. 그 결과 시장의 활력은 갈수록 떨어졌고 새로운 기업보다는 도태되는 기업들만 늘어갔다. 경제성장이 눈에 띄게 느려지면서 고용도 이전만큼 활성화되지 않자 결국 스웨덴 정부는 1980~1990년대에 이르러 대대적인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했다.
이 같은 스웨덴 체제의 역사를 볼 때, 저자는 보편적 복지국가를 통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이루고 완전한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사실상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국민들을 상대로 증세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설득 없이 기업들에게만 징벌적 규제를 부과하면서 북유럽 복지국가를 모델로 내세우려는 시각에 대해 비판한다. 저자는 스웨덴이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의 토대 위에서 발전한 나라인 만큼, 현재 우리가 부러워하는 그들의 복지정책은 모두 성장의 동력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에서만 가능하고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즉 경제성장에 저해가 되는 보편적 복지는 줄이되, 취약 계층에 대한 선별적 지원을 확대하고 시장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웨덴이 처한 현실에 기초해 우리가 맞이할 수 있는 미래를 내다보는 이 책은 선진 복지국가들이 지닌 딜레마를 넘어 우리도 우리 자신만의 새로운 사회 모델을 구축해야 함을 강조한다.
목차
들어가며: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의 정확한 평가를 위해
Part 1. 정말 스웨덴이 복지천국일까
Chapter 01. 의료서비스
치과 스케일링이 18만 원? | 병원에 가지 못하는 스웨덴 사람들 | 공공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어도 사보험이 따로 필요한 이유 |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
Chapter 02. 육아 및 교육
회사에 아이를 데려오는 부모들 | 학용품까지 무료로 제공되는 학교 | 우리 학교가 파산했어요 | 왜 스웨덴 학생들은 학업성취도가 높지 않을까 | 모난 돌이 정 맞는다
Chapter 03. 연금 및 고용보험
은퇴한 스웨덴 노인들은 연금을 얼마나 받을까 |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니는 스웨덴 노인들 | 고용보험은 국가의 책임이 아니다 | 복지체제의 무임승차자 | 기본소득, 빈곤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Chapter 04. 스웨덴과 한국의 복지체제
어떤 복지를 택할 것인가
Part 2.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세금의 진실
Chapter 01. 누가 세금을 내는가
모든 근로소득에 성역 없는 과세를 | 물건 가격의 1/4을 부가가치세로 낸다 | 의외로 스웨덴의 조세정책은 매우 기업친화적이다 | 재산세와 상속세 폐지를 통해 부의 대물림이 계속되다 | 왜 복지천국에서 도박을 할까 | 월급쟁이들의 쌈짓돈을 턴다
Chapter 02. 탈세 감시 사회
6,000원만 내면 내 옆자리 동료의 연봉을 알려 드립니다 | 나의 일거수일투족,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Chapter 03. 현금 없는 사회
탈세를 없애기 위해 현금도 없앤다 | 자금의 출처를 밝혀라
Part 3. 스웨덴 사회, 그리고 스웨덴 사람들
Chapter 01. 표면의 평등
난민도 비즈니스맨도 모두 평등하다 | 여성도 군대 간다 | 소득이 평평한 나라
Chapter 02. 이면의 불평등
끊어진 부의 사다리 | 개천에서 용 나지 않는다 |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
Chapter 03. 사회 통합의 위기
난민, 스웨덴에 몰려오다 | 이민자 혐오로 가득 찬 극우정당이 인기를 끄는 이유 | 이민자 유입으로 인해 커져가는 갈등 | 평등한 사회라는 환상
Chapter 04. 코로나19 방역의 실패
국민을 상대로 한 러시안룰렛 게임 | 정부의 무책임한 방관이 코로나19 사태를 키우다 | 코로나19, 첫 발발부터 지금까지 | 무상의료 국가에서 코로나19 사망률이 더 높았던 이유
Part 4. 부자 나라의 가난한 국민들
Chapter 01. 가난한 국민들
전 세계에서 빅맥 햄버거가 세 번째로 비싼 나라 | 스웨덴의 실제 물가, 얼마나 비쌀까 | 스웨덴 사람들이 차가 없는 이유 | 스웨덴에서 더 저렴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 청교도적인 삶에서 이케아와 H&M이 탄생하다 | 스스로의 힘으로 버티는 자급자족의 삶 | 맞벌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Chapter 02. 부자 기업의 나라
독점대기업을 묵인하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 | 기업들이 늙어간다 | 정경유착, 그리고 발렌베리가문의 탄생 | ‘착한 기업’이라는 허상
Chapter 03. 부동산의 고통
만성적인 공급 부족, 수요 초과의 주택시장 | 임대주택 입주를 위한 20년의 기다림 | 임대주택인데 한 달 임대료가 100만 원? | 아파트를 산다 해도 소유주는 따로 있다 | 할아버지가 빌린 부동산 대출을 손자가 갚는다
Part 5. 지상낙원은 없다
Chapter 01. 스웨덴이라는 반면교사
사실 스웨덴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다 | 시장은 항상 옳다 | 성장이 먼저일까, 복지가 먼저일까
Chapter 02. 복지국가의 조건
스웨덴식 복지 모델이 한국에 뿌리내릴 수 없는 이유 | 복지국가, 얼마나 지속가능할까 | 미국보다 북유럽에서 자산소득의 격차가 심하다 | 복지국가에 대한 착각과 환상 | 표를 쫓는 정치인들이 위험한 이유
나오며: 선진 모델을 따라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
주석
책 속으로
들어가며
나는 우리가 몰랐던, 혹은 주목하지 않았던 스웨덴의 새로운 모습을 단순히 소개하는 것에 그치고 싶지 않다. 이 책이 스웨덴이 거쳤던 역사를 거울로 삼아 우리의 미래를 가늠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무상복지의 도입, 국민연금 등 복지제도의 개혁, 난민과 이민자 유입으로 인한 사회 갈등, 과도한 세금과 주거비 부담 등 스웨덴이 맞이한 현실은 언젠가 우리의 미래로 돌아올 수 있다.
-6쪽
의료서비스
스웨덴의 의료시스템 아래 가장 큰 혜택을 입을 수 있는 순간은 중병에 걸려 치료와 수술을 해야 할 때다. 수술비용은 본인부담액 15만 원(1,150크로나)을 넘기지 않고 입원비 역시 하루에 1만3,000원(100크로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수술한 다음이 문제다. 부족한 병상 수 탓에 웬만큼 큰 병이 아닌 이상 병원 입원 기간이 1~2일 이내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내 주위의 한 지인은 자궁 적출수술을 한 후 회복이 채 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하루 만에 퇴원했고 또 다른 지인은 인근 병원에서 병실이 나지 않아 차로 5시간 걸리는 지역까지 수술을 하러 다녀왔다. 스웨덴 인구 1,000명당 병원의 병상 수는 2.1개로 한국의 12.4개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OECD 평균(4.7개) 역시 크게 하회한다.
-21~23쪽
연금 및 고용보험
스웨덴 근로자들이 이처럼 별도의 고용보험까지 가입하는 이유는 스웨덴의 고용시장이 유연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에 가까운 체제라 알려진 스웨덴에서 노동자 해고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선입견에 가깝다. OECD에서 발표하는 고용보호지수에 따르면 스웨덴 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고용보호지수는 2.45로 OECD 평균(2.06)보다 조금 높다. 지수가 높을수록 노동자 보호가 강하다는 뜻이다. 이는 미국(0.09)보다는 훨씬 높고 네덜란드(3.61)보다는 낮으며 한국(2.42)과 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스웨덴의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고용보호지수는 0.81로 OECD 평균인 1.74와 한국의 2.13을 크게 하회한다.
-54쪽
누가 세금을 내는가
스웨덴의 소득세 최저세율은 32% 안팎으로, 한국의 6.6%(지방소득세 포함)에 비해 훨씬 높다. 반면 소득세법상 가장 높은 구간의 세율은 52% 수준으로 한국의 49.5%(지방소득세 포함)에 비해 약간 높다. 6,800만 원(52만3,200크로나)은 스웨덴에서 근로자 평균연봉의 1.5배를 넘길 정도의 그리 높지 않은 소득이지만 소득세 최고세율로 진입하는 기준연봉이 된다. 적용 대상자는 전일제(풀타임)근로자 3명 중 1명꼴이다. 이처럼 고소득자가 아닌, 중산층 근로자들에게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것은 북유럽 국가 전체의 공통적인 특징으로 덴마크는 근로자 평균소득의 1.3배 이상을, 노르웨이는 1.6배 이상을 벌어들이는 근로자에게 최고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73쪽
누가 세금을 내는가
세간의 고정관념과 다르게 스웨덴의 세제 구조는 자본친화적이다. 상속세ㆍ부유세는 없고 부동산 재산세는 낮은 반면, 자본이득세는 30%로 근로소득세의 최저세율보다 낮다. 그래서 부자들에게 유리하다. 오히려 전형적인 부자증세 모델을 따르는 것은 한국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재산세와 상속세가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스웨덴과 한국의 소득세율만 놓고 단편적으로 스웨덴이 한국보다 더 많은 세부담을 진다고 단언할 수 없는 이유다.
-83쪽
이면의 불평등
스웨덴과 같이 복지체계가 탄탄하게 설계된 국가에서 자산의 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얼핏 모순처럼 들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각종 데이터에서 증명하듯 오히려 과도한 복지는 자산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실제로 스웨덴의 자산 하위 30%는 순자산이 마이너스이며, 그다음의 20%는 불과 스웨덴 평균가정의 한 달 소득에 상응하는 정도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복지국가의 중하위계층이 제공받는 혜택이 충분치 않아 빚을 져야 하는 상황에 처했거나, 오히려 사회적 안전망 덕분에 굳이 자산을 축척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 나머지 저축을 포기했기 때문일 수 있다. 이유야 어쨌든 상속세 없이 자산을 후대로 고이 전달할 수 있는 부유층과 저축을 하지 않는, 혹은 하지 못하는 처지의 중하위계층 간 자산 격차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자료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123~124쪽
사회 통합의 위기
이민자들의 거주지 역시 스웨덴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스톡홀름 인근에서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곳은 링케뷔, 텐스타, 허스비와 같은 외곽이다. 이곳에서는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스웨덴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이 지역들은 원래 1960~1970년대 스웨덴 정부에서 주택난 해소를 위해 임대주택을 대규모로 지어 공급했던 곳이었지만 어느새 원주민들은 떠나고 이민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코리아타운처럼 출신 국가별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 출신의 이민자들끼리 마을을 형성해서 격리되다시피 살아가는 것은 스웨덴에서만 볼 수 있는 다소 특이한 현상이다. 이 경우 이민자들에게 ‘이민자’라는 낙인을 찍어 사회적 갈등을 더 증폭시킬 우려가 있다.
-139쪽
코로나19 방역의 실패
심지어 보건당국이 생존 가능성이 낮은 노인들을 받지 말라고 병원에 지시했다는 충격적인 증언도 나왔다. 2주 이상 산소호흡기 치료를 받아야 하는 고령의 중증환자들은 여유 병상이 확보되어 있는 상태에서도 집중치료실로 옮겨지지 못했다. 병상이 다 차면 생존 가능성이 높은 환자가 무작정 대기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코로나19 사망자들을 연령대로 비교해보면 70대가 22%, 80대가 41%, 90대가 25%로 고령층의 치사율이 매우 높다는 것이 확인되는데, 코로나19 감염증세로 인해 병원에서 집중치료를 받은 환자들의 연령대는 60대가 30%, 50대가 27%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80대 이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특히 90대 이상은 조사 기간 중 아무도 집중치료를 받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166~168쪽
가난한 국민들
그 무엇보다도 스웨덴 사람들의 생활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은 주거비다. 스웨덴 국민들은 평균적으로 가처분소득의 21%를 주거비로 지출한다. 주거 유형별로는 월세 생활자들이 가처분소득의 28%를, 자가아파트 거주자는 21%를, 자가주택 거주자는 15%를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4세 이상 독신 여성들은 모든 연령대와 성별을 막론하고 가장 낮은 수준의 주거비용을 지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주거비용이 가처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월세 생활자들의 경우 41%나 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들의 주거비 비중은 자가아파트 거주자의 경우 32%, 자가주택 거주자이면 23%로 나타났다.
-179쪽
부자 기업의 나라
한국 재벌체제가 갖고 있는 문제점은 스웨덴의 재벌, 발렌베리그룹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들은 160년간 5대에 걸친 세습 경영을 하며 재단-지주회사-자회사로 이어지는 피라미드구조를 구축했고, 차등의결권을 통해 소수 지분으로도 경영권을 확보했다. 상속과 관련한 논란이 없는 것은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위치한 공익재단을 통해 그간 세금을 면제받고 있었고, 2005년 이후부터는 아예 상속세 제도가 폐지되어 이와 관련된 책임에서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208쪽
부동산의 고통
스톡홀름 내 임대주택에 입주하기 위한 평균 대기기간은 10.8년이다. 입지가 좋은 곳을 원한다면 바사스탄 지역 입주까지 23.2년을, 쿵스홀멘은 21.2년을, 그리고 외스테맘의 경우 19.8년이라는 시간을 버텨야 한다. 외곽 지역이라고 입주가 쉬워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시내에서 11~15킬로미터가량 떨어진 허스비(12.6년), 프루엥엔(11.1년)에 살고 싶더라도 역시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한다. 심지어 스톡홀름 인근에서 가장 치안이 불안한 곳으로 꼽히는 링케뷔 입주를 위해서도 10.3년이란 시간이 필요하다.
-215쪽
복지국가의 조건
스웨덴이 1970년대 공고한 복지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세기 중후반 이후 100여 년 동안 이어져온 전무후무한 경제호황이 있었다. 스웨덴 정부가 자본 세력의 기득권을 인정해주는 정책을 펼친 것도, 대기업에 경영권 방어 수단을 인정해준 것도, 법인세와 재산세를 낮춘 것도 궁극적으로는 경제성장과 부의 창출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기업이 번 돈과 기업이 만든 일자리는 내수 활성화로 이어지고, 소득세와 소비세를 중심으로 한 세수를 증가시켜 복지서비스를 위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복지정책의 관건은 지속적인 생산성 향상과 경제성장이다. 성장과 복지는 아귀가 잘 맞아야 하는 톱니바퀴와 같다. 하나가 맞물리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경제위기는 또한 복지체제의 위기이기도 하다.
-2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