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남부의 허름한 아파트 23번지. 그곳에 모여든 여섯 명의 사람들. 고독한 독신남 토머스, 친절한 이란인 망명자 호세인, 은둔형 외톨이 제라드, 가출 소녀 셰릴, 그곳에서 칠십 평생을 산 베스타. 그리고 사장의 불법자금을 들고 도망친 죄로 전 세계를 떠돌며 숨어 살게 된 콜레트까지. 치매에 걸린 엄마 재닌을 돌보기 위해 노스본 23번지에 오게 된 콜레트는 음흉한 집주인 로이를 포함해 여섯 명의 이웃들과 한 아파트에 살게 된다.
콜레트는 첫날부터 음침한 기운을 느껴 떠나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집주인 로이의 살인사건에 연루되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웃들과 한배를 타게 된다. 그런데 이들 중 한 명은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연쇄 살인마!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그 무엇도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과연 이들은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까?
- 2015 매커비티 상 최고의 미스터리 소설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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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은 바 옆에 서서 마개를 딴 레미 마르탱 병을 앞에 두고 브랜디 잔을 들어 술을 마시면서, 말리크 오타랑과 부림 사디라주가 그 남자를 계속 발로 차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가 그 모습을 목격한 순간, 남자의 머리가 홱 뒤로 젖혀졌다. 부서진 코에서 핏줄기가 우아하고 아름답게 호를 그리며 솟구쳤다. 말리크는 한 발로 서서 다른 한 발을 무릎 높이로 들어 올려 그를 짓밟았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룩소르 라운지가 돌연 침묵에 잠겼다. 다섯 개의 머리통이, 미소는 얼어붙고 동공은 놀라움으로 확장된 채 일제히 그녀가 있는 쪽을 홱 바라봤다. 리사는 출구를 향해 달렸다. 그녀는 죽어라 도망쳐야 한다는 걸 알았다. _p.21
“미안해.” 소금기 어린 말이 그의 목에 걸렸다. “오, 니키, 미안해. 미안해. 난 그럴 생각은 아니었어.”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공허하게 그의 어깨 너머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녀의 입은 놀라서 반쯤 벌어져 있었다.
“네가…… 네가 다시 떠날까 봐 겁이 났어. 너도 알지? 난 그걸 견뎌 낼 수가 없어. 정말이지 견딜 수가 없다고. 외로워.”
그는 계속 흐느꼈다. 자기 연민에 감정을 소모하고, 자기 존재의 허무함에 사로잡혔다. _p.25
콜레트는 실내복 가운을 내려뜨린 채 문 쪽으로 갔다. 카메라는 문 위쪽 고리에 부착돼 매달려 있다. 그녀가 잠시 고개를 들자, 마치 그녀가 그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켈트인의 크림색 피부에, 짙은 눈썹, 선이 분명한 입술이 풍만하고 건강했다. 그 입은 마치…….
그의 머리 옆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젠장!” 그는 그 소리를 무시하려 했지만, 이미 분위기는 깨진 뒤였다. 콜레트 던이 몸을 돌려 거울 쪽으로 다가가 튜브에서 뭔가를 조금 짜내서 세안을 시작했을 때, 그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전화기를 귀에 댔다. “여보세요?” _p.158
베스타는 잠시 자기 영혼이 몸을 빠져나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거인이 몸을 펴자 기가 꺾인 노쇠한 늙은 여인이 보였다. 여기 오물들 사이에서 죽어 가는, 죽어서 잿빛으로 썩어 가는 자신이 내일 아침 발견되는 모습도 보였다.
그녀는 다리미를 철퇴처럼 휘두르며 돌진했다. 그를 강타한 느낌이 들었다. 도둑놈이 내는 ‘웁’ 소리를 들었고, 되는 대로 앞으로 휘두른 손이 도둑놈의 단단한 두개골에 닿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그녀의 발이 미끄러져 허우적댔다. 마치 만화 속 등장인물처럼 그녀는 허공을 향해 날았고, 팔을 휘저었다. 그리고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았다. 세상이 캄캄해졌다. _p.256
호세인은 가만히 침대에 못 박혀서,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흐느꼈다. 그녀가 여성 모임에 갔다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 지 오 년이 다 돼 갔지만, 그는 아직도 매일 잠에서 깨어나면 그녀가 거기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 (…)
그는 때때로 자신의 빈 방에 대고 아내에게 말을 건네곤 했다. 그러면 그녀가 돌아오기라도 할 것처럼. 그는 마법의 주문처럼 그녀의 이름을 읊었다. “로샤나, 로샤나, 로샤나.” 방이 고요 속에 잠기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되돌아오지 않으면, 그는 고통에 잠겨 침대 속에 몸을 웅크리고 손바닥으로 눈을 비비며 잃어버린 과거를 위해 흐느꼈다. _p.317
그녀가 그의 손에서 손도끼를 잡아채, 치켜들고, 대범하게 아래로 내리찍었다.
콜레트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그녀가 바닥으로 쓰러졌고, 다친 손 주변으로 온통 피가 소용돌이쳤다. 그녀는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막으려고 손가락이 사라진 손바닥에 힘을 꽉 줬다. 아팠다. 믿을 수 없을 만큼 통증이 극심했다. 딱 손가락 두 개였다. 손가락 두 개가 뭐라고? 손가락 두 개에서 나온 고통이 어떻게 이렇게 신경 전체로 내달릴 수가 있는 거지?
베스타가 타월을 집어 손도끼 손잡이에서 자신의 지문을 닦아 내고 욕조 속에 떨어뜨렸다.
“우리 아버지가 도축업자였다고 내가 말했던가?” _p.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