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우리의 영웅은 샌드위치를 주문하다가 중요한 자리에 늦게 된다
여기서 우리의 영웅은 장례식에 참석한다
여기서 우리의 영웅은 위대한 어떤 가치를 잃는다
여기서 우리의 영웅은 계획을 하나 세운다
여기서 우리의 영웅은 낯익은 기분을 느낀다
여기서 우리의 영웅은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린다
여기서 우리의 영웅은 피를 쏟는다
여기서 우리의 영웅은 행동을 개시한다
여기서 우리의 영웅은 루비콘 강을 건넌다
여기서 우리의 영웅은 주장한다
여기서 우리의 영웅은 주춤한다
여기서 우리의 영웅은 사라진다
여기서 우리의 영웅은 조각들을 맞추기 시작한다
여기서 우리의 영웅은 중요한 계산 착오를 범한다
여기서 우리의 영웅은 그 여자의 마음을 얻는다
여기서 우리의 영웅은 마침내 깨끗하게 정리한다
여자를 지배할 권력, 그것은 늘 해리를 매료시켰다. 비록 결혼 생활에서는 그런 권력을 누리지 못했지만……. 아니, 어쩌면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더 매력적인지도 모른다. 아내 안나는 성공 가도를 달리던 멋진 여성으로, 해리가 어떤 식으로든 권력을 행사하기 힘들었다.
12쪽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힘든 내 상황을 알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원하는 건 그것뿐인데……. 그게 그리 큰 욕심은 아니잖아?”
95쪽
그래도 딱 한 번 전화벨 소리를 들어야 한다. 자신이 완전히 단절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줄 전화 한 통. 그게 필요하다. 자신이 생명 유지 끈을 서둘러 끓어버리지 않았고, 남은 인생을 침묵 속에서 외롭게 살아가지 않으리라는 사실만 확인하면 된다.
153쪽
어느 곳에서든 변함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 이게 안나의 가장 큰 매력이자 본질적 특질이다. 어떤 순간이든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지키는 그 태도를 해리도 가질 수 있을까?
289쪽
“하지만 당신은 그다음에도 계속 날 부끄러워했어. 그래서 결국 이렇게 된 거고…….”
(……)
“부끄러워했다고? 그래, 물론 난 당신이 부끄러워, 개자식. 해리, 당신은 날 속였어! 싸구려 창녀들과 놀아나면서 말이야!”
399쪽
“살다 보면 그저 감내하며 무조건 헤쳐나가야 할 때가 있는 겁니다. 알겠죠?”
180쪽
안나는 세상을 떠났는데도 자신의 존재를 집 구석구석에서 생생히 드러내고 있다. 그에 비해 해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자기 존재를 밝혀줄 모든 증거를 눈 닿지 않는 곳에 둔 채 살아가고 있다.
245~246쪽
해리는 루실이 너무도 안쓰럽다. 끊임없이 충돌하며 거부당하는 메아리 속에 살고 있는 그녀가 너무나 불쌍하다. 해리는 그런 루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그러자 그는 자제력을 잊어버린다. 분노로 어질어질하고 너무 화가 치밀어 진정하려면 의자를 꼭 잡아야 할 정도다.
3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