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모든 풍경을 누비는 창조 신화
전 세계가 간직해온 수많은 창조 신화를 각 지역의 풍경을 따라 그림처럼 펼쳐낸 교양서. 저자는 창조 신화가 단순한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랫동안 그 지역에 살던 인간들이 마주한 기후, 지형, 자연재해 등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하며 과학의 ‘빅뱅 이론’보다 매력적인 ‘신화적 상상력’의 비밀을 파헤친다. 산, 물길, 동굴, 섬, 극지방이라는 5가지 큰 지형을 줄기로 삼아 북미부터 남미, 아프리카, 폴리네시아, 오세아니아, 서아시아,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세계 구석구석의 창조 신화 22가지를 다양한 도판 자료와 함께 풍성하게 전달한다.
들어가기 전에
들어가는 글: 태초의 순간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었나
0장 창조의 풍경
제1부 산
1장 누가 올림포스산에서 신들의 왕이 될 것인가 _남유럽
2장 중국의 풍경은 왜 기울어졌나 _동아시아
3장 네 가지 색깔로 이루어진 나바호족의 우주 _북아메리카
4장 태양을 창조한 아즈텍 영웅의 위대한 희생 _메소아메리카
5장 안데스 산맥에서 펼쳐진 가난한 신의 전투 _남아메리카
6장 대지의 소금을 불러온 아마존 여신의 변신 _남아메리카
제2부 물길
7장 바빌로니아 신은 어떻게 물과 인간을 지배했는가 _서아시아
8장 나일강을 아우르는 모든 창조의 기원, 벤벤 _아프리카
9장 거대한 나이저강이 되어 흐르는 사람의 아들, 만데 _아프리카
10장 틀링깃족을 위기에서 구한 큰까마귀의 활약 _북아메리카
제3부 동굴
11장 꿈의 시대에 동굴 속에서 생명을 창조한 여신 _오세아니아
12장 지하세계와의 전투에 이은 마야족 생명의 새벽 _메소아메리카
13장 신성한 동굴의 문을 지나 탄생한 잉카의 조상 _남아메리카
제4부 섬
14장 끊임없이 폭풍우와 싸우며 탄생한 천 개의 섬 _폴리네시아
15장 마우이는 어떻게 하와이 제도를 들어 올렸나 _폴리네시아
16장 도부섬 사람들이 팔롤로 벌레를 먹는 이유 _오세아니아
17장 부부의 힘겨운 육아로부터 탄생한 일본 열도 _동아시아
18장 동물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호데노쇼니족의 섬 _북아메리카
19장 체로키족 사람들은 왜 아이를 적게 낳았나 _북아메리카
제5부 극지방
20장 거인의 시체로 만들어진 세상의 기원과 종말 _북유럽
21장 이누이트 조상들이 하늘에서 벌이는 축구 경기 _북아메리카
22장 지구 최남단 해협에서 벌어진 무서운 전투 _남아메리카
나오는 글: 고대 그리스에서 현대 빅뱅까지
감사의 말
주석
그림 출처
들어가는 글
우리가 이 책에서 마주하게 될 이야기들이 현대 과학의 빅뱅 이야기와 확연히 다른 점은 의미와 목적을 찾는 인간의 탐구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창조이야기에는 사람들이 직접 참여한다. 이들은 초자연적인 힘과 대화하고 호의와 자비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물을 바치고 장대한 무대 위에 펼쳐진 위대한 인간 드라마에서 자신의 역할을 확보하기 위해 창조 신화를 다시 이야기하는 의식을 치른다. 그리고 형상화뿐 아니라 비유와 은유 같은 시의 문법을 사용해 이야기를 전한다.
-14~15쪽
0장 창조의 풍경
전 세계에 걸쳐 나타난 독창적이고도 영감으로 가득한 창조이야기들을 어떻게 정리하고 비교할 수 있을까? 주제에 따라 정렬하거나 수렵 채집, 농경, 도시국가, 왕국, 제국 등 여러 문화와 문명에 따라 신화를 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자연 관측에 특별히 주목하기로 했다.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의 상상력이 풍경에서 어떻게 시각과 다른 감각으로 감지한 것을 가져오는지, 또 인류 문화에 그토록 생기를 불어넣는, 거대한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끝없이 존속되는 서사를 어떻게 엮는지도 살펴볼 것이다. 말로 이루어지는 창조, 세계의 부모, 지구 잠수부의 등장 등 공통적인 주제를 간단히 짚겠지만, 화자와 청자가 공유하는 물리, 생물, 지질, 천체 환경에서 관찰된 사물이 각 이야기의 단단한 뿌리가 되어가는 모습에 좀 더 집중할 것이다.
-41쪽
3장 네 가지 색깔로 이루어진 나바호족의 우주
다른 생명체에 뒤섞인 인간성을 묘사하는 이야기는 인간과 동물,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경계를 강조하는 서양의 이원적 사고방식과 상충한다. 사람이 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고 지구상의 열등한 생물들을 다스릴 권한을 받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개념을 생각해보라. 나바호의 사고방식에서 인간은 그런 우월한 지위를 누리지 못한다. 대신 그들은 강인한 영혼으로 가득한 살아 있는 우주에서 살아간다. 또 질서를 얻기 위해서는 동물처럼 생긴 신들과 중재 노력을 해야 한다. 이 세계에서 사람과 동물의 경계는 전적으로 협의가 가능하다.
-58~59쪽
5장 안데스 산맥에서 펼쳐진 가난한 신의 전투
우아티아 쿠리는 아주 겸손했다. 또 가난하기도 했다. 누더기를 걸치고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대로 먹었으므로 고지대 사람들 야우요스는 그를 ‘구운 감자 줍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우아티아 쿠리는 또한 모든 동물의 길을 알았고 매우 영리했다. 이 사실은 그가 돌아다니다가 탐타 냠카Tamta ?amca라는 부자를 알게 되면서 드러났다. 이 부자는 평생 자신이 신이라고 말하며 많은 사람을 속였다. 불행히도 탐타 냠카의 건강은 그의 부유함만 못 했다. 그는 몇 년 동안 알 수 없는 끔찍한 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부유하고 아는 것도 많고 강한 사람이 과연 그렇게 아플 수 있는지 의아해했다. 의사와 샤먼을 아무리 데려와도 아무도 무슨 병인지 몰랐다. …
부유한 주인이 불러 침대 옆으로 간 우아티아 쿠리는 주인이 딸을 준다고 약속해야만 병을 고쳐주겠다고 말했다. 탐타 냠카는 이 제안에 뛸 듯이 기뻐했다. 하지만 주인의 큰딸의 부유한 남편 안치 코차Anchi Cocha가 이 말을 듣고 발끈했다. “너같이 별 볼 일 없는 놈이 감히 나처럼 강력한 자의 처제와 결혼을 한다고?”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저 거지 놈에게 단단히 창피를 주겠어.” 그래서 이 미래의 동서는 우아티아 쿠리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술과 춤으로 대결해보자!” 부자가 먼저 나섰다. 그는 무희 200명과 함께 자신의 팬파이프 악단이 연주하는 음악에 맞춰 대단한 춤을 선보였다. 순서를 마치자 가난뱅이가 미래의 부인과 북 치는 스컹크를 데리고 춤을 췄다. 스컹크의 북은 매우 특별했다. 북이 박자를 타기 시작하자 주변 산들이 함께 진동했다. 우아티아 쿠리는 이런 인상적인 춤으로 모두를 제치고 승리했다.
-97~99쪽
7장 바빌로니아 신은 어떻게 물과 인간을 지배했는가
《에누마 엘리시》에서 창조는 분리 행동으로 여겨진다. 사물이 무에서 갑자기 생겨나지 않고 본질이나 가능성이라 할 수 있는 ‘혼돈’이 이미 존재한다. 아프수와 티아마트의 결합으로 형성된 하늘과 땅은 원래 하나였고 퇴적물은 강의 민물과 함께 수평선까지 쭉 흘러가다가 짠물을 만나기까지 서서히 쌓여 삼각주를 이뤘다. 그와 대조적으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의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바람의 힘은 지하수, 하늘에서 내리는 물, 강물과 바닷물에 완전히 둘러싸인 우주에서 땅과 하늘을 분리한다. 이곳은 이야기 초반에 묘사된 차분하고 묽은 환경과는 매우 다른 역동적인 창조의 장소다.
-121~122쪽
9장 거대한 나이저강이 되어 흐르는 사람의 아들, 만데
파로는 또한 생식력을 더럽힌 쌍둥이 형제의 죄도 갚아야 했다. 그는 희생됐고 몸이 60조각으로 나뉘어 허공에 뿌려졌다. 이 조각들은 대지에 떨어져 나무로 부활했다. 하지만 망갈라는 하늘에서 파로의 본질을 살려 인간의 형상을 주고 방주에 태워 지상으로 내려보냈다. 이 방주는 하늘에 있던 그의 태반으로 만든 것으로 크리와 크리코로 사이 쿠룰라Kouroula라는 산에 정박해 있었다. 파로는 이곳의 이름을 자신을 따라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의 ‘만데Mande’라고 다시 지었다. 파로는 만데의 흐린 하늘에서 내려와서 처음에는 나이저강이 됐다고 한다.
-137쪽
10장 틀링깃족을 위기에서 구한 큰까마귀의 활약
어느 날 자신감이 생긴 큰까마귀의 아들은 오랫동안 계획하던 일을 실행하기로 했다. 아이는 상자를 들고 햇빛 사람의 집 천장까지 쭉 올라가면서 해, 달, 별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연기배출구를 통해 다 같이 휙 빠져나갔다. 아이는 햇빛을 상자에서 나가게 하면서 소리쳤다. “이제부터 빛이 있으라. 이제 사람들은 보고, 일하고, 돌아다닐 수 있다.” 그리고 해는 동쪽으로, 달은 서쪽으로, 북두칠성은 위로 보내면서 소리쳤다. “여명이 밝으면 해가 떠오르고 해가 지면 밤이 올 것이다. 일하고 돌아다니느라 힘들었던 사람들은 쉬고 잘 것이다. 그때는 북두칠성과 달이 이동하며 빛을 비출 것이다.” 이후로는 모든 빛이 한 사람의 소유가 되거나 한 장소에 갇히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모두가 빛을 이용하고 빛의 혜택을 받았다.
-143쪽
11장 꿈의 시대에 동굴 속에서 생명을 창조한 여신
얼마 후 털 달린 동물들이 새들의 날아다니는 능력을 질투하게 됐다. 어떤 물고기는 다른 동물들처럼 햇빛을 많이 받지 못한다고 불평했다. 이들은 그저 자신의 모습이 싫었다. 이때는 원하는 대로 변할 힘이 있었으므로 이들은 모습을 바꾸기로 했다. 어떤 쥐는 깃털 없는 새로 변신했다. 다람쥐와 여우도 똑같이 했다. 작은 물고기는 개구리로 변했다. 밤에도 사냥할 수 있도록 눈을 키운 새들은 밝은 낮에는 컴컴한 동굴에서 지내야 했다. 캥거루, 웜뱃, 코알라, 또 오리 부리에 비버 꼬리가 달린 생명체 등이상한 동물들이 풍경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태양 여신은 자신의 피조물들이 보이는 행태를 보고 아이들 두 명을 낳았다. 샛별과 달이었다. 이 둘이 아이 두 명을 낳아 지구로 보냈다. 그들이 우리 조상이 되고 동물들을 이끌게 된다. 지능을 선물로 받는 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현명하다. 하지만 이 선물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
-157~158쪽
12장 지하세계와의 전투에 이은 마야족 생명의 새벽
신들은 새로 지은 덤불의 수호자들에게 ‘각자의 언어로 서로 대화하라’고 명했다. “이제 우리의 이름을 지어라.” 신들이 말했다. “우리는 너희의 어머니-아버지다.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기도하며 기념일을 지켜라.” 하지만 동물들은 짹짹, 깍깍거리거나 울부짖기만 했다. “결과가 별로 좋지 않군요.” 조물주-모형 제작자, 낳고 기르는 자, 어머니-아버지가 말했다. 신들은 동물들에게 변해야겠다고 말했다. “너희가 기르는 것, 먹는 것, 잠자는 곳, 머무는 곳, 너희 것이라면 무엇이든 협곡과 숲에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의 기념일을 지켜줄 자들을 우리가 곧 창조하면 그들에게 “살이 먹힐 것이다”. 이제 신들은 새 환경을 보살피는 무거운 의무를 수행할 사람들을 창조해야 했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지만 이미 새벽빛이 동쪽에서 밝아오고 있어 신들은 불안했다.
-165~166쪽
14장 끊임없이 폭풍우와 싸우며 탄생한 천 개의 섬
여성 대지와 남성 하늘 사이에서 태어난 자연의 힘이 고도로 의인화되어 전투를 벌인다. 대지와 하늘은 단단히 결합하고 있었으나 창조의 아이들이 부모 사이를 억지로 떼어놓고 그 사이에 햇빛이 들어오면서 둘의 결합은 풀어진다. 부모를 떼어놓는 세력 중에는 숲과 땅의 산물도 있다. 하지만 가장 위협적이면서 주인공 역할을 하는 힘은 폭풍이다. 드넓은 바다 한복판에서 잘 살아보려는 사람들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폭풍은 풍경의 귀중한 가장자리를 끝없이 갉아먹으며 바다의 수위를 높인다. 폭풍은 허리케인 같은 기상이변을 일으킬 때 특히 위험해진다. 곤경에 처한 사람들은 줄어드는 땅을 지키고 어머니 대지의 몸에서 후손이 계속 자랄 수 있도록 이 사나운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181~182쪽
17장 부부의 힘겨운 육아로부터 탄생한 일본 열도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는 불의 신도 낳았는데 이 아이는 태어나면서 출산하는 어머니를 태워 죽인다. 책임감을 느꼈는지 남신 이자나기는 이자나미를 따라 요미(죽은 자) 땅으로 따라간다. 이곳에서 그는 마지막 숨을 들이마시려는 이자나미의 썩어가는 몸을 보게 된다. 수치심을 느낀 여신은 그를 쫓아가지만 지하세계의 음식을 먹은 탓에 두 세계를 분리하는 좁은 해협의 아와지문을 더는 통과할 수 없다. 이자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