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역학에서 마음에 대한 탐구까지…
인간이 앎의 지평을 넓혀간 과정을
열 가지 결정적 장면으로 엮어낸 ‘모든 지혜의 역사’
왜 자연철학인가?
철학에서 과학이 나뉘기 이전부터 시작해 다시 철학과 과학이 만나기까지,
열 가지 전환점으로 보는 인간이 사유한 앎의 여정
이 책에서 저자는 근대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스스로를 스승으로 삼아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시킨 이들과 그들의 학문을 《심학십도》의 형식으로 정리해 지성사의 흐름을 조망한다. 구체적으로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는 여헌 장현광부터 뉴턴, 데카르트, 스피노자, 볼츠만,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등 인물 중심으로 인간이 학문을 발전시켜간 길과 저자가 평생을 탐구해온 연구 주제들을 포갬으로써 인류가 어떻게 앎의 지평을 넓혀갔고, 동시에 그들의 어깨에 올라탄 저자 자신이 어떻게 공부를 심화시켜갔으며 지금에 이르러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를 아울러 정리했다.
그 과정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첫째, 형식적으로는 자연과학과 철학이 분리되기 직전 자연철학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간 다음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을 지나 생명을 다시 정의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 지혜의 역사를 〈심우십도〉에 빗댄다(*곽암의 〈심우십도〉는 한 개인이 진짜 자신, 또는 진리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소년이 소를 찾아 집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열 가지 장면으로 그린 우화다).
둘째, 내용적으로는 이론물리학에서 시작해 ‘앎’과 ‘생명’이라는 탐구 주제를 평생 붙든 끝에 철학적 성찰에 도달하게 된 스스로의 연구 인생과 그 성과를 앞서 이야기한 인류 지성사에 포갠다. 즉 근대 이전 자연철학에서 시작해 세분화된 오늘날 분과 학문들의 갈래를 역사상 인류가 그랬듯이 단계별로 차근차근 섭렵한 다음 앎의 큰 줄기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지금에 이르러 다시 분과 학문으로 갈라지기 전인 통합 학문으로서의 자연철학으로 돌아간다. 인류가 나아가는 지적 여정은 지향과 지양이 끊임없이 교차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책에서 소개되는 지성사의 열 가지 전환점은 독립적으로 분절되는 것이 아니라 인과관계가 성립되는 맥락을 형성하며, 저자 또한 공부의 과정에서 그 맥락을 차근차근 쫓아간 끝에 통합적 앎이라는 새로운 틀을 제시하며 지금까지의 흐름 너머로 나아간다. 이 책의 제목이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인 까닭이다.
여헌 장현광의 《우주설》에서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까지
물리학자가 철학적으로 들려주는 학문의 결정적 순간들이 지닌 의미
“사물은 왜 모두 땅으로 떨어질까요. 그리고 사물이 땅으로 떨어진다면 정작 땅은 어디로 떨어지는 것일까요? 이 구각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무엇과 닮은 것이기에 이 큰 땅을 품고 있는 것일까요? 이 큰 땅을 하늘의 대기가 버텨주고 있다는데 그렇다면 대기는 또 어디에 붙어 있는 것일까요? 혹시 이를 떠받혀줄 기氣라도 있는지요? 혹은 땅을 지탱할 또 다른 땅이 있는지요? _장현광의 〈답동문〉 중에서.
예를 들어 이 책의 첫 번째 챕터 〈소를 찾아나서다〉에서는 여헌 장현광의 저서 《우주설》과 〈답동문〉을 통해 조선에서도 근대 학문이 태동할 뻔했던 지점들을 짚었다.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은 장현광은 1666년 바닥을 굴러다니는 사과를 관찰하던 뉴턴과 같은 질문을 훨씬 먼저 떠올렸다. 즉 ‘모든 사물은 왜 땅으로 떨어지는가? 나아가 그렇다면 땅은 어디로 떨어지는가?’라는 물음을 〈답동문〉에서 제기한 것이다. 물론 장현광은 뉴턴과는 다르게 그 질문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모른다’라는 답을 솔직하게 밝히는 것으로 책을 끝맺는다. 그러나 이와 같이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을 선명하게 구분하는 장현광의 태도는 포항 구석의 한 선비가 근대 학문의 태도를 보이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어서 뉴턴과 데카르트가 연 고전역학부터 양자역학, 통계역학 그리고 저자가 탐구해온 생명의 구조 등을 거쳐 마지막으로 열 번째 챕터에서 지금까지 훑어 내려간 인류 지성사를 주돈이의 〈태극도설〉의 구도와 비교해 논의함으로써 삶 중심으로 형성된 동아시아의 학문 전통이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를 살피고자 했다.
나아가 저자는 이러한 인류의 지혜가 도약한 열 번의 결정적 장면과 자신이 걸어간 독보적인 공부의 경지를 합쳐 퇴계 이황이 작성한 《성학십도》를 변주한 ‘심학 10도’라는 표로 간단하게 도식화했다.
셋째, 구조적으로는 지성의 변곡점 열 가지를 담은 각각의 챕터들이 모두 세 개의 층위 안에서 전개되도록 구성했다. 즉 첫 번째는 ‘역사 지평’으로, 인류 지성사의 진행 과정 속에서 어떤 계기로 어떤 지적 폭발이 탄생했는지를 에피소드 중심으로 풀어나간 역사적 층위다. 두 번째는 ‘내용 정리’로, 저자가 이러한 역사에서 태어난 새로운 학문들의 핵심을 어떻게 짚어내고 또 정리했는지를 종종 정교한 수식을 곁들여 소개하는 내용적 층위다. 세 번째는 ‘해설 및 성찰’로 지금까지의 내용들을 쉽게 해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흐름들이 지닌 의미를 보다 깊게 고민하고자 했다.
과학을 모르는 철학자와 철학을 모르는 과학자들의 세상에서
한 노학자가 스스로의 삶으로 이야기하는 ‘진짜 공부’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가 집필된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른바 ‘전문가 바보’가 생겨난 오늘날 학문 토양에 대한 반성이다. 언젠가부터 공부를 하는 데 있어 앎 그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천착한 아주 좁은 분야 외에는 모르는 것이 미덕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를 학자로서의 겸양이나 또는 엄밀함을 추구하는 태도로 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철학자는 자연과학을 몰라도 상관없고, 과학자는 철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전혀 지장 없게 된 것 또한 사실이다. 철학에서 자연과학이 분리된 이후 본의 아니게 ‘앎을 사랑한다’는 의미를 가진 철학이 간직했던 학문 지향이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기존 분과 학문들을 연결 짓는 이른바 통섭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지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근대 이전 자연철학 본류의 지향은 간직하되 오늘날 학문의 대략적인 전모를 담아낼 새로운 틀을 마련하고자 했다. 당연히 쉽지 않은 작업이며 한 개인의 성취로 완성될 수 있는 범위도 아니다. 다만 이 책이 그러한 새로운 앎의 틀에 대한 몸 풀기, 맛보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앎’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는가?
새로운 틀에 담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앎의 지평
또 하나는 한국의 당대 지성이 ‘온전한 앎이란 무엇인가’라는 거대한 질문을 붙들어온 평생의 연구 과정을 중간 정리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폴 고갱의 작품 제목이기도 한 ‘우리는 어디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은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붙잡고 있는 대표적인 철학적 화두다. 따라서 무수한 책에서 다뤄오면서 더러는 조심스럽게 결론을 짓고 더러는 답을 유보한 채 더 큰 질문으로 나아갔다. 물리학에 바탕을 둔 이 책 또한 이러한 철학적 질문으로 회귀하지만 그 과정이 지금까지 시도되었던 것들과는 사뭇 다르다. 이론물리학의 바탕에서 복잡한 수식과 정교한 사유의 틀을 활용해 자연과학적으로 풀어나가고자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찍이 인간의 자아를 양자역학적 파동함수로 규명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는데, 저자는 이러한 가설을 그저 철학적 흥밋거리로만 보지 않고 진지하게 그 가능성을 수학적으로 검토한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는 단순히 한 노학자가 그간의 업적을 책 한 권으로 그러모아 서랍식으로 정리하는 데 그친 결과가 아니다. 저자는 2003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한 이후에도 연구 활동을 꾸준하게 지속해 더욱 깊은 경지로 사유와 고민을 진전시켜갔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성과들을 모두 담았다. 예를 들어 그간 저자가 꾸준하게 이야기해온 ‘온생명’과 ‘낱생명’을 대중적으로 풀어 다른 연구들과 연결 짓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생명의 정의를 내릴 때 자유 에너지가 태양으로부터 지구로 직접 쏟아진다는 과거의 주장을 입증해 2018년 《Physica A》에 등재되기까지 한 최근 논문의 성과까지 반영하고자 했다.
따라서 이 책은 철학에서 분리된 자연과학이 다시 철학을 들여다보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지혜의 역사책이자, 온전한 앎을 추구하며 철학적 질문들을 자연과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한 과학 저술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여든이 넘도록 평생 공부를 지향해온 저자 자신이 오직 공부로서 스스로를 이야기한 ‘개인’이 드러나지 않은 공부 자서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