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추리소설 작가 도진기의 2013년 작품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가 10년 만에 새로운 표지와 본문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 책은 피고인의 변론을 맡은 ‘소크라테스 변호사’와 피고인을 무작정 처벌하려는 ‘욱 검사’,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 고민하는 ‘염라대왕 판사’ 간의 공방을 통해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법의 원칙을 22가지 이야기로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동화 또는 역사 속 인물들을 저승 법정에 불러내어, 그들의 유무죄를 가려내면서 현대의 법 개념을 코믹한 터치로 알기 쉽게 해설하는 이 책은 청소년교양도서로도 선정되며 “보통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법 상식 교과서”로 인정받았다.
저자의 말: 출간 10주년 기념 개정판에 부쳐
들어가며: 모르면 평생 답답할 법의 핵심 원리를 이야기로 만나다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재판의 시작
: 염라 판사, 소크라테스를 국선 변호인으로 임명하다
진술 1 -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 법의 범위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법과 도덕
봉이 김선달과 물장수의 차이는?: 형사와 민사
진술 2 - 죄에도 공식이 있다: 죄가 되는 행위
양치기 소년은 그 후로도 거짓말을 계속 했을까?: 죄형법정주의
동쪽 마녀를 죽인 도로시는 죄가 있을까?: 고의와 과실
윌리엄 텔은 정말 명사수일까?: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유괴범인가?: 인과관계
진술 3 - 벌할 수 없는 죄도 있다: 죄와 무죄 사이
헨젤과 그레텔은 살인 혐의를 벗을 수 있을까?: 정당방위
타이타닉호의 디카프리오가 케이트를 밀치고 혼자 살았다고?: 긴급피난
고흐가 귀를 입에 물고 다니는 까닭은?: 심신상실
검투사 막시무스는 꼭 상대방을 죽여야 했을까?: 기대가능성
진술 4 - 재판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형사재판의 원칙
알리바바와 도둑들만 아는 암호는?: 무죄추정의 원칙
미란다는 왜 아동을 납치하고도 무죄인가?: 미란다 원칙
암행어사 없이 춘향이 재판이 열린다면?: 증거재판주의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자는 이 중에 있다?: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
마녀재판이 불법인 결정적 이유는?: 위법한 수사로 얻은 증거
말 도둑 ‘포카 말타스’와 ‘쓰렉’의 유무죄를 가른 기준은?: 함정수사
이태원 사건 용의자를 다시 법정에 세울 수 있을까?: 일사부재리의 원칙
진술 5 - 거의 모든 재판에는 돈 문제가 걸려 있다: 민사재판의 원칙
담보도 없이 만 냥이나 빌린 허생은 사기꾼?: 사적 자치의 원칙
베니스 상인은 약속대로 살 1파운드를 베어 내야 할까?: 사적 자치와 예외
진술 6 - 같은 사건에서 상반된 판결이 나올 수 있다: 형사와 민사의 차이
무죄 판결을 받은 O. J. 심슨이 왜 손해 배상을 해야 할까?: 증거의 우열과 확신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재판의 결말
: 믿고 싶지 않은 증거, 믿어야 하는 증거
소크라테스: 법은 무엇보다 강한 규칙입니다. 이런 법을 함부로 사용하면 곤란하겠죠? 불편한 일이 있다고 해서 무작정 법을 만들어대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법은 중요한 일에만 관여하고, 일상생활에서의 도덕은 사람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염라: 맞아. 법이 너무 많아도 살기 힘들 거야.
소크라테스: 법은 도덕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습니다. 도덕 중에서 중요한 일에만 관여합니다. 예를 들어서 앞의 ①, ②, ③처럼 때리거나, 훔치거나, 사기를 치거나 하는 못된 행동은 법이 나서서 못하게 막는 것이죠. 많은 도덕 중에서 ‘최소한 이것만은 어기면 안 된다’는 것들입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란 말은 이런 생각에서 나왔습니다.
염라: 흠. 그런 기준이면 이제 해결되겠군….
소크라테스: 그게 또 그렇지도 못합니다.
염라: 왜!
--- 「진술 1: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 중에서
피리 부는 사나이는 유괴범인가?: 인과관계
소크라테스: ‘원인과 결과’의 관계만 있다고 해서 인과관계를 인정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법에서는 상당인과관계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염라: 상당인과관계? 또 전문 용어야!
소크라테스: 어렵지 않습니다. 상당인과관계란, 어떤 원인이 있으면 ‘보통은’ 그러한 결과가 발생한다고 인정되는 관계입니다. 쉽게 말하면, ‘대개는 그렇다’는 관계입니다. 독을 먹으면 ‘보통은’ 쓰러지게 되죠. 몽둥이로 때리면 ‘보통은’ 상처를 입습니다. 따라서 독을 먹인다는 원인과 쓰러진다는 결과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몽둥이로 때린다는 원인과 상처를 입는다는 결과 사이에도 상당인과관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딸을 낳으면 ‘보통은’ 그 딸이 나중에 커서 다른 사람에게 독 사과를 먹이게 된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아주 예외적이고 특이한 경우이지요? 왕비의 엄마가 왕비를 낳은 일과 백설 공주가 독 사과를 먹고 쓰러진 일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없습니다. 따라서 법으로 처벌할 수 없습니다.
염라: 그렇군.
--- 「진술 2: 죄에도 공식이 있다」 중에서
타이타닉호의 디카프리오가 케이트를 밀치고 혼자 살았다고?: 긴급피난
소크라테스: 배가 난파되어 물에 빠진 사람이 떠다니는 나무판자 하나를 붙들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때 또 다른 물에 빠진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그 사람도 살기 위해 나무판자를 붙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판자는 한 명의 무게밖에 견디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이 매달리면 나무판자가 가라앉아 둘 다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나무판자를 붙잡고 있던 사람은 뒤에 온 사람을 밀어내어 물에 빠져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때 다른 사람을 밀치고 나무판자를 독차지한 사람을 처벌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카르네아데스가 제시한 문제라고 해서 ‘카르네아데스의 판자’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염라: 쳇. 그리스 이름은 왜 이렇게 다들 어렵소.
소크라테스: 나무판자를 차지한 사람은 자신이 살려고 다른 사람을 밀쳐내 죽게 했습니다. 어쨌든 살인을 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재난을 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그래서 처벌하지 않습니다.
사자성어로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지금 막 눈앞에 위험이 닥쳐오고 있는데 꼬박꼬박 법을 지켜가며 피하기는 힘들겠지요? 이런 ‘긴급’한 상황에서의 ‘피난’ 행동은 처벌하지 않습니다. 법률 용어로는 긴급피난이라고 부릅니다.
염라: 이번 용어는 좀 쉽네. 긴급피난이라. 긴급하게 피난한다, 이거지?
소크라테스: 그렇지요.
--- 「진술 3: 벌할 수 없는 죄도 있다」 중에서
알리바바와 도둑들만 아는 암호는?: 무죄추정의 원칙
소크라테스: 그런 식이라면 도둑 10명을 확실하게 처벌할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도둑이 아닌데 덩달아 처벌받는 억울한 나그네 1명이 생기지 않습니까?
검사: 그러니까 10대 1….
소크라테스: 그건 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식이라면, 언젠가는 우리 중 누군가도 억울하게 죄인이 될지도 모릅니다.
염라, 검사: 설마….
소크라테스: 설마가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법이란 우리 모두를 위한 규칙입니다. 그런데 거꾸로 법이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야 안 될 말이죠. 차라리 범죄 조직이 우리를 쫓는다면 더 나을 겁니다. 경찰이나 가족이 우리를 지켜 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법이 그렇게 한다면? 미심쩍다는 이유만으로 죄인이라고 낙인찍고 감옥에 가둔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법은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법이 그런 식으로 쉽게 결정을 내린다면 더욱 더 무서운 일이 됩니다.
염라: 들어 보니 소크라테스 변호사 말이 맞는 것 같아.
소크라테스: 그래서 예로부터 이런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열 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염라: 아앗! 그건 바로 우리 재판과 똑같은 상황 아니오.
소크라테스: 그렇습니다. 10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1명의 나그네가 억울하게 처벌받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 「진술 4: 재판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중에서
베니스 상인은 약속대로 살 1파운드를 베어 내야 할까?: 사적 자치와 예외
소크라테스: ‘사회질서에 어긋나는 행위’란, 쉽게 말해서 보통 사람의 양심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의 계약을 말합니다.
포샤: 어떤 겁니까? 예를 들면요?
소크라테스: 범죄를 같이 하자고 하는 계약이라든가, 사람의 몸을 상하게 하는 계약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맹구와 영구가 같이 도둑질을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약속을 어기면 상대에게 100만 원을 주기로 했습니다. 마음 약한 영구는 그날 밤 후회로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막상 도둑질을 하려니 양심을 가책을 느꼈던 거지요. 하지만 그만두려니 약속을 어겼다는 이유로 맹구에게 100만 원을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영구는 도둑질을 하기로 한 약속을 지켜야 할까요? 어기면 100만 원을 맹구에게 주어야 할까요?
염라: 내게 묻는 거요? (아차, 내 법정이 아니지.)
포샤: 아마 내게 묻는 거겠죠? 아닐 것 같네요.
소크라테스: 맞습니다. 영구는 고민할 필요가 없겠지요? 도둑질을 하자는 약속은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것이기 때문에 무효입니다. 따라서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또 맹구한테 약속을 어겼다고 100만 원을 줄 필요도 없습니다.
샤일록: 어째 분위기가 불리한데….
--- 「진술 5: 거의 모든 재판에는 돈 문제가 걸려 있다」 중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O. J. 심슨이 왜 손해 배상을 해야 할까?: 증거의 우열과 확신
“이것 참. 도무지 황당해서. 형사재판에서는 심슨은 무죄였어. 심슨이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고 판단한 거지. 그런데 민사재판에서는 심슨이 졌어. 심슨이 아내를 죽였다고 판단한 거지. 재판이 미친 거 아닌가?”
“수학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하지만 법에서는 가능한 일입니다.”
“그게 어떻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의 원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원리가 다르다고?”
“민사재판은 두 사람이 다투는 것입니다. 한쪽이 이긴다면 반드시 다른 쪽은 지게 됩니다. 둘 다 이길 수는 없습니다. 맞지요?”
“그렇겠지.”
“판사는 어찌됐든 누가 이기는지 결정을 해야 합니다. 확신이 없더라도요. 그럼 어느 쪽 손을 들어주어야 하겠습니까? 증거 재판이니까 당연히 증거가 더 많고 더 확실한 쪽을 이기게 해야겠지요?”
“그럴 수밖에 없겠지.”
“민사재판에서는 증거가 더 나은 쪽이 이깁니다. 상대방보다 증거가 조금이라도 더 나으면 이기는 겁니다.”
“증거가 완벽할 필요는 없단 거군. 상대방보다 낫기만 하면 된다, 이거 아닌가.”
“그렇습니다. 민사재판은 두 사람 간의 다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