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격언인 ‘개와 늑대의 시간’은 빛과 어둠이 혼재되어 저 멀리서 다가오는 털북숭이가 나를 반기는 개인지 나에게 달려드는 늑대인지 분간하기 힘든 황혼의 순간을 가리킨다. 멀리 고대 로마시대의 집정관 선거에서부터 가까이는 한국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욕망이 충돌하며 하나의 합의를 이끌어나갔던 다양한 역사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데, 선거는 ‘개와 늑대들의 시간’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정치란 한 인간의 욕망이 공적인 영역에서 수많은 욕망들에게 평가를 받는 과정이다. 이러한 정치의 상징은 선거라는 제도다. 역사를 살펴보면 선거 이후 선택받은 ‘개’들은 선거 이전의 민의를 배신하고 ‘늑대’로 변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저자는 이처럼 개와 늑대들의 시간에서 개를 선택하는 데 성공했던 소수의 사례와 늑대를 선택해 실패한 다수의 역사들을 두루 아울러 살펴보면서 선거라는 제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시작하는 글 선거의 의미를 역사에 묻는다
기원전 60년 로마, 카이사르
독재자를 끌어내리는 자격은 오직 시민에게 있다
전쟁의 후유증, 흔들리는 공화국 | 드디어 시작된 늑대들의 시간 | 반복되는 복수와 독재자의 탄생 | 검투사 노예들의 반란 | 젊은 야심가들의 등장 | 먼저 치고 나간 폼페이우스 | 두 톱니바퀴 사이에는 기름이 껴야 한다 |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등장 | 평민파의 희망, 카이사르 | 시한부 삼두정의 시작 | 집정관 카이사르 | 그리고 마침내 일인자 카이사르 | 로마의 선택이 독재자를 불렀다
656년 메디나, 알리
강력한 지지자야말로 가장 큰 적이다
칼리프, 예언자의 후계자 | 예언자는 이제 없다 | 예언자를 대신할 자는 누구인가? | 거듭되는 칼리프들의 죽음 | 알리는 칼리프가 될 수 없다! | 칼리프 알리와 갈등의 폭발 | 열렬한 지지자는 열렬한 적을 부른다 | 알리에게 죽음을! 이슬람 최초의 분파 | 예언자는 사라지고 독재자가 지배한다
1251년 쿠릴타이, 몽케
민주주의란 합의된 결과가 아니라 합의하는 과정이다
새로운 칸 낙점의 신화 | 화합에는 위대한 양보가 요구된다 | 툴루이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 | 갈등 속에 등극한 새로운 칸 | ‘날치기’ 쿠릴타이 | 사라진 관용, 무너진 전통 | 제국에 잡아먹힌 초원의 민주주의
1784년 영국, 윌리엄 피트
보수란 원칙과 상식을 추구하는 가치여야 한다
선거제도를 악용한 선거제도, 부패선거구 | 정당의 탄생, 토리와 휘그 | 부패선거구 덕에 의회에 입성한 피트 | 이념도 낭만도 없이, 동지도 적도 없이 | 영국 역사상 최연소 총리의 탄생 | 탄핵유발자 애송이 총리, 폭스를 방문하다 | “탄핵? 누구를 위한 탄핵인데?” | 피트의 승리와 부패선거구 폐지 | 개혁이란 현실의 단단함에 깨지기 마련이다 | 죽음으로 완성시킨 개혁
1848년 프랑스, 루이 나폴레옹
영웅은 ‘영웅’을 원하는 시민들을 항상 배반했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질서 | 노동자들의 반쪽짜리 승리 | 새로운 나폴레옹이 나타났다 | 나폴레옹의 아들도 손자도 아닌 나폴레옹의 후계자 | 폭풍우가 된 가짜 나폴레옹 | 가쁘고 밭았던 대통령 선거전 | 여러분께 대통령 후보 여섯 명을 소개합니다 | 루이 나폴레옹은 어떻게 승리했는가? | 라이벌 숙청과 야당 탓하기 | 프랑스 국민, 두 번째로 황제를 승인하다 | 모두를 배신한 두 번째 나폴레옹 | 어릿광대와 함께 끝난 위대한 지도자 향수
1860년 미국, 링컨
권력은 진심을 얻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정계에 입문한 농사꾼 현자 | 에이브러햄 링컨의 우울 | 연방 분열의 씨앗, 노예제 | 노동력 확보 문제, 또는 건국이념을 놓고 벌어진 갈등 | 미래를 결정한 노예제 토론 | 찍돌이 링컨에서 정직한 에이브로 | 링컨의 대역전극 | 분열하는 민주당 대선 후보들 | ‘산꼭대기에 오른 사람’ | 흑인도 백인도 아닌 국민의 이름으로 | 가장 미국적인, 미국만의 신화
1912년 새로운 미국, 우드로 윌슨
위대한 정치는 패배의 경험에서 나왔다
새로운 리더를 원한 도금시대 |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정치로! | “정치에서 가장 뛰어난 교사가 되고 싶어” |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죽는 거지요” | 다른 듯 서로 닮은 두 사람의 만남 | 얼떨결에 대통령이 된 루스벨트 | 안팎으로 곤봉을 휘두르는 루스벨트 | 루스벨트의 후계자, 테프트 | “우리 주에도 윌슨이 있었으면 좋겠다!” | 윌슨과 루스벨트, 친구에서 적으로 | 극적으로 대선 후보에 선출된 윌슨 | 루스벨트, 세 번째 당선을 꿈꾸다 | 공화당의 분열, 제3의 후보는 제3의 정당에서! | 미국인들은 마초보다 신사를 선택했다 | 1912년 대선이 선출한 위대한 실패자
1932년 독일, 히틀러
결정을 타인에게 미루면 괴물이 선택된다
패전의 분노, 제국의 몰락 | 가장 진보적이고 성숙한 바이마르 공화국 | 그런데 왜 제3제국이 탄생했는가? | 드디어 등장한 히틀러 | 세상에 불만이 많았던 낙오자 | 소박하게 시작된 하켄크로이츠 | 극단과 투쟁과 불만의 이름으로, 맥주홀 쿠데타 | 대공황과 나치의 성장 | 히틀러의 한계, “그는 너무 매력적이고 위험하다” | 제3제국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선거는 과연 민주주의에 어울리는가?
1960년 미국, 존 F. 케네디
때로 선거는 보이는 것이 전부인 유혹이다
불안하고 풍요로운 시기, 1950년대 미국 | 만들어진 정치인, 케네디 | 정치계에 뛰어든 노력파, 닉슨 | 바람둥이로 위장된 강박 | “외교 하면 닉슨이지!” | 이미지는 구호를 앞선다 | 금수저 둘 흙수저 하나 | 위기일발 케네디 | 대선 후보로 선출된 닉슨 | 드디어, 닉슨 대 케네디 | 최초의 ‘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 | 정정당당하지 못하게 거리를 벌린 케네디 | 케네디의 승리, 그러나 풀리지 않은 의문 | 무언가 결핍되었던 젊은이의 양지 | 그러나 그것이 정치다
1979년 영국, 대처
소박한 정서를 품은 ‘보통의 말’로 설득하라
새로운 대안이 필요했던 옛 제국 | 식료품 집의 딸내미 마거릿! | “왜 영국은 별것 아닌 개혁에도 벌벌 떠는 건가요?” | “당수가 되겠다고? 당신, 미쳤군!” | 비주류, 소수자가 모두의 리더가 된다는 것 | 불만의 겨울을 맞은 ‘영국병’ | ‘병든 송아지’를 안은 최초의 여성 총리 | 영국병에는 신자유주의라는 극약이 필요하다 | 격렬하게 사랑받거나 격렬하게 증오받거나 | 박수가 잦아들기 전에 떠나라 | 대처, 그의 유산 | ‘보통의 말’로 대화했던 강철의 정치인
1987년 대한민국, 김영삼과 김대중
선거에서는 승리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
1961년 5월부터 1987년 6월까지 | 봄은 왔지만 아직 봄이 아니다 | 김영삼, 꾸준하게 그리고 조용하게 | 김대중, 고비를 넘고 또 넘어 | 위기를 넘어 돌아온 40대 기수들 | 개헌, 뜨거운 감자 | 다시 젊은이의 피가 국민을 부르다 | 국민에게 발가벗은 제5공화국 | ‘보통 사람’ 노태우 | 김종필과 삼김시대의 시작 | 두 김 사이에서 커지는 불안 | 완전히 발가벗을 수 없었던 두 사람 | 쓰레기통에 장미꽃은 피지 않는 것일까? | 네 개로 분리된 대한민국 | 발광하는 선거 공약들, 그리고 뜻밖의 사건 | 12월 16일, 심판의 날 | 위대한 사람들의 어리석은 선택
담합은 특정 인물에 대한 견제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번번이 배제되었던 특정 인물에 대한 지지자들의 안타까움과 애착은 점점 과격해져 광신으로 이어졌다. 결국 이슬람은 여러 분파로 분단되고, 무슬림은 왕족과 평민으로 구분되는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다. 그들 모두가 한 마음으로 믿고 따랐던 예언자가, 어떤 일이 있어도 막기를 바랐던 세상이었다. _〈예언자는 사라지고 독재자가 지배한다〉 중에서.
스물네 살 애송이 총리였던 피트는 영국에 ‘보수의 가치’를 뿌리내렸다. 현실을 넘어서거나 여러 입장을 무시하지 않는 정치, 그러나 원칙과 상식을 바로 세우기 위해 개혁을 꾸준히 추구하는 리더십이야말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보수의 가치였다. _〈죽음으로 완성시킨 개혁〉 중에서.
신화가 되어버린 인물을 이어받는 사람은, 그 유산이 축복일 뿐 아니라 저주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실수가 그 신화에 대한 봉인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2017년 1월, 이 비극적인 희극은 한국에서 되풀이되었다. _〈어릿광대와 함께 끝난 위대한 지도자 향수〉 중에서.
루이 나폴레옹 대통령 당선이 2월 혁명에 대한 ‘강간’이었듯, 히틀러 총리 취임은 11월 혁명에 대한 ‘강간’이었다. 그러나 히틀러의 집권에는 보나파르티즘 이상의 것이 있다. 루이 나폴레옹은 나폴레옹 1세의 후광에 기댔던 한편, 히틀러는 링컨처럼 보잘 것 없는 배경을 내세워 서민층을 공략했다. _〈선거는 과연 민주주의에 어울리는가?〉 중에서.
1950년대의 영혼 없는 야심가들, 선거전 과정에서 어이없을 만큼 대조적으로 부각된 그들의 이미지는 끝내 그들의 관에까지 새겨졌다. 케네디는 총격에 쓰러짐으로써 숭고한 진보의 영웅, 인권의 순교자로 남았다. 반면 닉슨은 워터게이트 하나로 오늘날까지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미국민들 사이에서 꼽히고 있다. 부당한 역사적 평가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정치다. _〈그러나 그것이 정치다〉 중에서.
1990년 11월 20일, 대처는 보수당 당수 선거에서 과반을 넘는 득표를 했으나 규정상 확정짓기에는 네 표가 부족해 2차 투표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15년 전 자신이 처음 당수가 되었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히스는 1차 투표에서 자신에게 지자 2차를 포기했었다. 히스는 그때 ‘천명이 다했음을’ 느꼈다고 했다. 대처도 그렇게 행동했다. 그는 2차 투표에 불참했다. 한 시대가 끝났다. _〈박수가 잦아들기 전에 떠나라〉 중에서.
부도수표가 되어 버린 노태우의 중간평가 공약을 비롯해 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이 대선이 공정하게 치러졌다고 보기 어려운 사실을 구성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단일화 실패의 원죄를 씻어주지는 못한다. 진실이 어떻든 노태우는 국민 앞에 ‘발가벗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각자의 사정이 어떻든 두 야당 후보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들은 신성한 숭배의 제단에서 스스로 내려왔으며, 이후에도 유력한 정치인으로 한국 정치를 주도해 나갔지만 위대한 지도자의 반열에는 다시 오르지 못했다. _〈12월 16일, 심판의 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