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설명
프롤로그. 칭찬보다 응원이 필요할 당신에게
가족소개
1장. 미처 아내를 생각하지 못했다 ::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과 가족이 된다는 것
[소고기미역국] 얼떨결에 부엌에 들어갔다
[연근들깨샐러드] 포카와 마꼬의 첫 만남
[우렁이버섯된장찌개] 미처 아내를 생각하지 못했다
[건새우시금치된장국] 아내는 돌을 씹어 삼키고 나는 소화제를 씹어 삼켰던
[달걀국] 아이는 예쁜데 육아는 지옥이네
[북엇국] 육아에 지친 건 우리만이 아니었다
[버섯들깨순두부] 비난도 칭찬도 받고 싶지 않아요
[해신탕과 닭죽] 엄마, 제발 집에 오지 마세요
[딸기주물럭] 만우절과 산후우울증 그리고 첫 가족사진
[치킨과 맥주] 우리는 우리가 기특했다
[도다리쑥국] 알맞은 시절
2장. 산후조리를 둘러싼 거짓과 오해 :: 아내의 식탁을 차리며 생각한 것들
[시금치페스토파스타] 미역국, 네가 아니어도 우린 잘 살 거야
[맷돌호박수프] 400여 년 전 한 사내의 실수 때문에
[즉석떡볶이] 모유수유는 하고 싶고 떡볶이도 먹고 싶고
[전복죽] 두 유 노우 Sanhujori?
[양배추스테이크] 모유 사관학교 열등생은 졸업 후
[상추샐러드와 최유제 채소] 젖이 없어서 원통한 그대에게
[아욱표고버섯조림과 칼슘이 많은 식재료] 칼슘이 부족한 그대에게
[연어장과 비타민D가 많은 식재료] 비타민D는 핑계고, 아무튼 연어장
[비트파스타와 철분이 많은 식재료] 철들었네, 파스타
[우엉잡채] 산욕기를 마치는 우리의 자세
3장. 아이는 저절로 크지 않는다 :: 살림과 육아를 하며 생각한 것들
[콩국수] 나는 개를 키워서도 아이를 길러서도 안 되었다
[스위스식 감자전 뢰스티] 엄마는 이제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다
[중국식 오이무침 파이황과] 그렇게 부모가 그렇게 할머니가 되고 있다
[홍어무침과 콩나물국] 나를 낳고 그대들은 어땠나요?
[강된장과 호박잎쌈] 그날의 풍경을 너의 이름으로 지었다
[고등어구이] 가난한 그대, 나를 골라줘서 고마워요
[토로로소바] 우리는 게을러지기로 결심했다
[시금치토마토프리타타] 육아휴직과 경력단절
[오리가슴살스테이크] 다시 출근하는 그대에게
[대파육개장] 세종대왕이 바랐던 육아휴직
[소갈비찜] 아이는 저절로 크지 않는다
[버섯전골] 해피엔딩인 줄 알았는데
[이유식] 아이를 위한 식탁
[파프리카달걀찜] 미래의 마꼬가 현재의 포카에게
[들깨미역국] 마꼬의 생일
에필로그. 육아휴직이 어땠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미주
맛탕은 날이 갈수록 기운이 없었다.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계속 잠만 잤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내의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무르며 걱정만 했다. 그러고 보면 육아는 나름 준비를 했는데, 아내의 산후조리에 대해선 전혀 생각해본 적 없었다. 당연히 산후조리는 조리원이 해주는 걸로 여겼다. 우습게도 조리원에서 2주를 보내면 아내가 멀쩡해질 줄 알았다. (중략)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육아휴직 동안 내가 보살펴야 하는 건 아이만이 아니라는 걸.
---31~32쪽 [미처 아내를 생각하지 못했다] 중에서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기묘해서 한번 발길을 멈추면 다시 길을 내는 게 어려워진다. 가족도 친구도 심지어 언제든 열려 있는 식당조차 마음의 길이 끊기니 다시 만날 수 없었다. 그게 너무 당혹스러워 때론 서글프기도 하지만 별 수 없다. 시절이 가버린 것이다. ‘제철’의 뜻은 알맞은 시절이다. 알맞은 시절에 태어난 과일과 채소, 생선은 그래서 약이 되나 보다. 아이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니 올해는 끊긴 길을 새로이 내고 싶었다. 봄이 우수수 꽃을 떨어뜨리기 전에 나는 아내에게 도다리쑥국을 선물처럼 요리해주고 싶었다.
---73~74쪽 [알맞은 시절] 중에서
무엇보다 하루 세 끼, 하루 세 번의 즐거움을 미역국으로만 채우고 싶진 않았다. 음식 섭취는 즐거워야 하고, 다양하게 먹는 게 산모의 영양에도 좋다. 산모에게 꼭 필요한 영양소인 칼슘, 철분, 비타민, 단백질과 섬유소를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나는 아내의 산후조리 식단을 짰다. 채소의 경우 뿌리, 줄기, 잎, 열매로 나눠 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했다. 단백질은 동물성 단백질과 식물성 단백질로 나눠 고기는 즐길 정도로만 먹고 콩, 두부, 견과류로 할 수 있는 요리를 공부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굉장히 거창해 보이지만 그때의 마음가짐은 겨우 이 정도였다. ‘미역국, 네가 아니어도 우린 잘 먹고 잘 살 거야.’
---82p [미역국, 네가 아니어도 우린 잘 살 거야] 중에서
주변을 둘러봐도 남편이 아내의 몸조리를 해줬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다. 친정 엄마나 시어머니가 아니면 산모는 미역국 끓일 시간조차 나지 않는다. 울고 보채는 아이를 달래느라 산모가 기진맥진한 사이, 남편들은 무얼 하고 있는 걸까. 당연한 얘기겠지만, 아마도 일을 하고 있을 거다. 밤새 아이를 안아주다가 아이 분유와 기저귀 값을 벌기 위해 졸린 눈을 비벼가며 일을 하고 있을 거다. 회사에서 집에서 고생하는 아빠들을 책망할 마음은 없다. 다만 나는 궁금할 뿐이다. 아이가 태어났는데, 왜 아빠들은 일하고 있어야 할까.
---135p [산욕기를 마치는 우리의 자세] 중에서
문득 밤마다 그림을 그리던 맛탕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리 피곤해도 펜을 놓지 않고, 그만 쉬라고 해도 아내는 꼭 하루에 한 장씩 그림을 그렸다. 처음엔 아내가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았다. 아마도 아내는 스스로를 지키려고 했던 게 아닐까. 애석하게도 나로부터. 6개월 육아휴직은 해도, 경력단절은 단 한 번도 고려해보지 않은 기혼 남성인 나로부터 아내는 자신의 경력을 지키고자 혼자 분투했던 것이다. 성평등 한 척하며 살았지만 나는 사회가 주는 혜택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굳이 양보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내에게까지 양보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는 사실을 나는 육아휴직을 하며 겨우 깨달았다.
---199~200p [육아휴직과 경력단절] 중에서
아이가 귀해졌다면서 세상은 아이들을 환대한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세상은 마치 아이들이 저절로 크길 원하는 것 같다. 남편도 기업도 사회도 여성의 독박육아와 경력단절이 아니면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걸 분명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쯤 되면 거의 묵인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여자 혼자만 참고 조용하면 되니까. 그러면 육아하는 여자를 제외한 모두가 행복하니까. 진심으로 묻고 싶어졌다. 왜 우리는 육아가 지옥이 될 때까지 내버려둔 걸까.
---222p [아이는 저절로 크지 않는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