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소금길의 유숙지(BC 1000) | 후기 청동기 시대, 이집트는 수천 년 동안 파라오의 왕조 시대를 이어왔고, 동쪽으로는 대제국 페르시아가 될 메디아와 파르사 왕국이 건설되던 시절에도, 로마는 아직 로마가 아니었다. 인간이 정주하지 않던 그 땅은 소금장수와 쇠붙이장수가 쉬어 가는 길목일 뿐이었다.
II 반신반인(BC 850) | 테베레 강을 굽어보는 일곱 언덕에 소수의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정주하기 시작했고 장터가 열렸다. 사람들은 이 지역을 ‘루마(ruma, 젖꼭지)’라 부르기 시작했다. 언덕이 여성의 젖가슴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느 날 이곳에 두 거인이 찾아들어 전설로 남는다.
III 쌍둥이(BC 757~716) | BC 753년, 씨족의 우두머리들이 세력을 다투던 땅에서 돼지치기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도시를 건설하고 왕을 자처했다. 확고부동한 왕의 지지자들은 원로원을 설립했고, 신전과 요새, 광장(포룸)이 건설되었다.
IV 코리올라누스(BC 510~491) | 시민들은 왕을 쫓아낸 자리에 공화국을 세우고 평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새로운 직책으로 호민관을 선출했다. 그러자 귀족들은 공화정이 우수한 지도자를 우매한 민중이 끌어내린 반란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코리올라누스의 전설도 계급투쟁이라는 시대배경에서 비롯된다.
V 12표법(BC 450~449) | 극심한 신분 대립 속에 10인 위원회가 이끄는 비상체제에 들어섰다. 이때 평민 여성이 10인 위원에게 농락당한 사건을 계기로 폭동이 일어나고 최초의 성문법 12표법이 포룸 벽에 새겨졌다. 이제 글로 쓴 말이 왕이었고, 이 왕은 시민들이 언제라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VI 베스타 신녀(BC 393~373) | BC 390년, 로마가 갈리아인들에게 점령당했다. 일곱 달 동안 집집이 약탈당하고 도시 전체가 불타버렸다. 갈리아인들에게 배상금을 내어주고 폐허 속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로마를 버릴 것인가, 재건할 것인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게 된다.
1장. 소금길의 유숙지_37쪽
세계의 다른 곳들에서는 인간들이 큰 도시를 지었고, 전쟁을 벌였고, 신들에게 신전을 지어 바쳤고, 영웅들을 칭송했고, 제국을 꿈꾸었다.(……)
하지만 강 안의 섬과 근처의 일곱 언덕은 여전히 인간이 거주하지 않았고 신들의 관심도 받지 못했으니, 거기서는 이렇다 하게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2장. 반신반인_67쪽
“이날 이때까지 그 괴물이 온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 괴물이 죽은 것만큼 경사스런 일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절망에 빠져 이곳을 버리기 직전이었어요. (……) 바로 그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져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 이것은 우리가 영원히 이 루마 땅에 살 운명이라는 징표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우리의 운명이 특별하다는 신념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3장. 쌍둥이_133쪽
“로물루스는 평민들을 사랑하고, 평민들도 그를 사랑하네. 왜 아니겠는가? 그는 돼지치기로 자랐어! 궁에서 살고는 있지만 마음은 돼지우리에 가 있지. (……) 그는 태어나길 일판을 저지르고 대중을 선동하도록 태어났어. (……) 자넨 왕이 오만해졌다고 불평하지만, (……) 자네의 관심은 오직 분수를 모르는 신참들이나 평민들에게서 자네의 특권을 지키는 것뿐이지.”
4장. 코리올라누스_203~204쪽
“평민들이 계속 자기들 멋대로 한다면, 티투스, 어느 날 아침 자넨 전혀 낯선 세계에서 깨어나게 될 거네. 가장 미천한 자들이 가장 존귀한 사람들에게서 권력을 찬탈해서 포티티우스 같은, 이름에 붙는 전통적인 특권이 더는 의미가 없는 세계 말이네. (……) 공화국이 탄생한 이후, 평민들은 귀족에게서 권력을 빼앗으려고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하여 늘 로마의 안전과 번영을 해쳤지.”
5장. 12표법_274쪽
새 법은 동판으로 떠서 시민이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포룸에 게시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큰소리로 읽어주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제부터 로마의 법은 경험 많은 원로원 의원들과 법률가들이나 아는 구두 전승, 다시 말해 진부한 선례들과 일시적 방편과 모호한 추측과 난해한 추론의 집합체가 아니었다. (……) 로마 역사에서 처음에는 왕들의 발언이 최고의 권위였고, 다음에는 선출된 집정관들의 발언이 그 자리를 차지했지만, 이제 글로 쓴 말이 왕이었고 그 왕은 시민들이 언제라도 찾아볼 수 있었다.
6장. 베스타 신녀_300쪽
“(……)신전을 짓는 것은 유노 레기나를 모시기 위해서인데, 신전 건축으로 실제로 재미를 보는 것은 나라에서 정한 도급업자들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신전 건축비가 그들의 호주머니로 다 들어간다는 것이지요. 그 도급업자들 대다수는 귀족이고 이미 큰 부자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대개 노예들을 부리기 때문에 그런 공사가 벌어져도 평민 일꾼들에게는 아무런 이익도 돌아가지 않아요. 그 노예들은 또 나라에서 전쟁 포로로 잡아 업자들에게 값싸게 판 사람들이지요.”
7장. 자기 운명의 건설자_44쪽
“원래의 도로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녀서 땅바닥에 다져진 통로나 다름없었지. 짐승들도 그런 길은 만들 줄 아네. (……) 그러다가 마침내, 어떤 이름 모를 천재가 길이 저절로 생기도록 두고 보지 않고 목적에 알맞은 도로를 만들기로 했고, 그리하여 도로 건설 기술이 탄생했지.(……)”
8장. 스키피오의 그림자_117~118쪽
시민들은 단지 멀리 왕정시대에서 비롯한 연례행사에 참여해야 한다는 애국적 의무 때문에 마지못해 제전에 참여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칸나이 대학살과 베스타 신녀들의 비행을 겪은 데다 포로들의 구원 요청이 박정하게 거절당한 사태까지 겪고서 거의 넋이 나간 상태였다.
로마는 슬픔과 근심으로 마비되어 있었다. 도시의 미래는 암담함 그 자체였다.
9장. 그라쿠스 형제의 친구_187쪽
“내 이름은 철자가 잘못 되어 있었고 글씨도 서툴었지만, 그 현수막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네. 그런데 현수막은 거기만 있는 것이 아니었네. 지나면서 보니, 한길에서 멀리 떨어진 집까지 살아남은 농가마다 그런 현수막을 걸어놓고 있었어.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공유지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려주시오.’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노예들이 늘어나는 걸 막아주시오.’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우리 땅과 우리 일을 돌려주시오.’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우릴 도와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