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머리에 -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역사 배경 - 동양 고전의 정수 <사기열전>과 중국 고대 역사
1장 꿈꾸는 20대, 내 인생의 사람 만들기
그 어떤 지위보다 사람이 중하다
덕을 위해 왕위마저 버린, 백이와 숙제
문경지교의 사귐은 위기도 기회로 만든다
강대한 조나라를 만든 재상과 장군, 인상여와 염파
인재를 사귐에 귀천을 따지지 마라
3천 명의 식객을 거느린 전국시대 사공자, 맹상군
나를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이 있는가?
중국 역사상 최고의 자객, 전제
나의 뜻을 전파할 사람을 키워라
시공을 초월한 성인군자, 공자
2장 꿈꾸는 20대, 내 안의 열정 깨우기
마지막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던지다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위해 평생을 바친, 오자서
몸의 불편함이 열정을 포기하게 할 수는 없다
앉은뱅이의 몸으로 재상의 자리에 오른, 범수
처지는 궁핍해도 열정은 크게 가져라
미천한 관리에서 통일 진나라의 승상이 된, 이사
한번 마음먹은 일에 결코 후회는 없다
진시황의 간담을 서늘케 한 자객, 형가
백년의 삶도 짧고 강렬하게 살아라
청년 용장, 곽거병
3장 꿈꾸는 20대, 신념에 충실하기
내 인생의 가장 강렬한 에너지, 신념
모래를 품고 강으로 뛰어든 충직한 시인, 굴원
동서고금의 가장 위대한 신념은 사랑!
2천 년 세월을 울리는 사랑의 주인공, 사마상여
젊은 날의 치욕은 큰 인생을 위한 밑거름이다
한나라를 통일하고도 결국 토사구팽을 당한, 한신
큰일을 이루려면 최소한 10년은 준비하라
한무제의 흉노 정벌 정책을 실현한 장군, 위청
포기와 성공은 신념의 차이에서 갈린다
궁형의 치욕을 견뎌내고 《사기》를 집필한 역사학자, 사마천
4장 꿈꾸는 20대, 타인의 마음 다루기
모든 성공의 길은 용인用人으로 통한다
춘추전국시대 최고의 지략가, 관중
먼저 경쟁자의 마음을 읽어라
복숭아 두 개로 세 명의 장수를 죽인 천재 재상, 안평중
크든 작든 세상사는 심리전이다
심리전으로 제나라를 되찾은 지장, 전단
소(小)를 취하여 대(大)를 이루는 지혜
진시황의 마음을 읽고 현명하게 대업을 이룬 장군, 왕전
권모술수에 대처하는 마음의 자세
삼천갑자의 전설, 동방삭
5장 꿈꾸는 20대, 내 인생의 원칙 세우기
첫 원칙이 미래를 좌우한다
《손자병법》을 완성한 춘추전국시대 최고의 군사전략가, 손자
원칙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춘추시대 ‘법가’의 정통을 세운, 위앙
다른 사람의 불평불만을 두려워하지 마라
‘대쪽 법관’의 대명사, 장탕
원칙에도 원칙이 있다
나라와 자식 사이에서 고뇌한 비운의 장군, 악양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라
남과 다른 생각으로 부를 모은 거상, 임공
6장 꿈꾸는 20대, 나만의 자신감 단련하기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다
앉은뱅이가 되어 통쾌한 복수를 성공한, 손빈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며 공부하다
천하를 말로 조롱한 유세객, 소진
나보다 더 뛰어난 명의는 없다
‘죽은 사람도 일어나게 한’ 전설의 명의, 편작
기회를 포착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힘
역사상 가장 간 큰 장사꾼, 여불위
비록 시작은 미미하나 꿈은 크게 가져라
가난뱅이 서생에서 중국 최고의 부자가 된, 의돈
부록 - 주요 사기 연보
사마천은 <사기열전>에서 “최선의 지도자는 백성의 마음에 따라 다스리고, 차선의 지도자는 이익을 미끼로 백성을 다스리고, 보통의 지도자는 도덕으로 백성을 설교하여 다스리고, 최악의 지도자는 형벌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다스리고, 최하의 지도자는 백성과 다투면서 다스린다”라고 설파했다. 백성과 논쟁을 일삼는 지도자를 폭군보다 더 나쁘다고 본 것이다. 우리 시대의 지도자들을 사마천의 잣대로 비교하면 한결 평가하기가 쉬울 것이다. -25쪽
공자는 애제자 자로가 죽은 뒤에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공자의 나이도 어느덧 73세였다. 노나라 추읍에서 태어나 성인으로 칭송을 받고, 현실 정치에 참여했으나 뜻을 이룰 수 없자 자신의 이상을 실천할 나라를 찾기 위해 천하를 주유했다. 정나라에서는 상갓집 개라는 오명을 입기도 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천하를 표랑하면서 대도(大道)가 무엇인지 깨우쳤다. 그리하여 노나라로 돌아와 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육경을 집필했다. 뜻을 세우는 것만큼, 나의 뜻을 전파할 사람을 키우는 것도 중요함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그 덕분에 그의 학문과 사상은 맹자에 이르러 더욱 빛을 발했으며, 이에 후세 사람들은 유교 사상을 공맹지도(孔孟之道)라고까지 불렀다. -89쪽
이사는 어느 날 군(軍)의 측간에 들어갔다가 쥐들이 오물을 먹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쥐들은 사람이나 개가 접근하면 소스라쳐 놀라서 달아났다. 이사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창고에 일을 보러 갔다. 창고에도 쥐들이 있었는데, 그 쥐들은 개나 사람이 접근하지 않아 마음대로 곡식을 먹고 있었다.
“변소에 있는 놈이나 창고에 있는 놈이나 다 같은 쥐새끼인데 한쪽은 늘 사람이나 개가 접근을 할까봐 두려워하고 한쪽은 아무 근심 없이 곡식을 먹는구나.”
이사는 창고와 변소에 있는 쥐들을 비교하고 크게 깨달았다.
“인간이 현자(賢者)가 되고 우자(愚者)가 되는 것은 저 쥐새끼와 같은 것이다. 몸을 의탁하는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 귀천이 달라진다.” -122쪽
근상의 말에 회왕은 굴원을 조정에서 내쳤다. 실망한 굴원은 집에서 두문불출하면서 간신이 임금의 총명을 흐리는 것을 근심하여 <이소(離騷)>를 지었다.
아침에는 모란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마시고
저녁에는 가을 국화의 떨어지는 꽃부리를 먹는다
진실로 내 속마음이 아름답고 한마음이라면
오랫동안 초췌하게 지낸들 어떠하리
굴원이 지은 이 시는 충신이 간신의 모함으로 우울하게 지내는 심경을 절절하게 묘사하여 많은 시인과 선비가 즐겨 읽었다.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비장하고 고결하면서도 향기가 있어서, 사마천은 일월과 빛을 다툰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고 칭송했다. -156쪽
그러나 천하를 통일한 한고조 유방은 한신의 세력이 지나치게 강대해지는 것을 우려하여 그를 회음후로 격하시켰다. 유방을 위하여 온갖 고생을 하면서 전투마다 승리를 거두어 천하제일의 명장이라는 말을 들은 한신은 비참해졌다.
“토끼가 죽으니까 사냥개를 잡아먹는구나.”
한신은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고사성어를 남겼다. 한신은 유방을 원망하다 진희의 난에 가담한 것이 발각되어 여태후에게 처형되었다. 한 시대를 뒤흔든 명장이 권력 쟁탈에 휘말려 죽은 것이다. -182쪽
사마천은 오로지 《사기》를 집필하기 위해 삶을 선택했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은 누구나 목숨을 연장하고 싶을 것입니다. 나 또한 겁이 많아서 죽음이 두려웠으나 나아가고 물러가는 분수는 지킬 줄 아는 사람입니다. 어찌 뇌옥에 갇히는 치욕을 인내하면서 참을 수 있겠습니까? 미천한 종이라도 자결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실낱같은 목숨을 부지하려고 애를 쓴 것은 마음속에 맹세한 일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이대로 죽으면 후세에 내 문장이 남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