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진정 소중한 것을 돌아보다”
시간의 멈춘 방에서 사람의 의미를 생각하다
김새별 저자가 찾는 현장에는 그게 어디든 마지막 순간을 외로이 맞이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유품은 저마다 다르게 물들인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여준다. 강박장애로 집 안에 물건을 가득 쌓고 살아온 중년 여성의 쓸쓸한 마지막, 멋진 어른으로 살고 싶었지만 마음의 그늘에 짓눌려 끝내 세상을 등진 청년, 이혼 후 두고 온 아들을 잊지 못하고 밤새 대문 앞을 지키던 치매 노인의 애끓는 모정이 꺼져가는 순간……. 작별 인사 한마디 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우리 이웃의 안타까운 모습이자, 어쩌면 어느 순간 나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찾아올 수 있는 오늘날의 안타까운 초상이다.
그래도 저자는 마냥 손 놓고 어두운 미래를 기다리지만 않는다. 떠나간 사람들의 마지막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책은 역설적이게도 시작을 이야기한다. 쓸쓸한 끝이 아니라 삶에 대한 애착, 조금 더 나은 내일이 찾아올 거라는 희망, 서로를 굳게 붙들어주는 연대를 바라는 마음이 책 곳곳에 알알이 새겨져 있다.
저자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영상은 “또 한 명의 인생을 지웠습니다”라는 문구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언젠가는 “또 한 명의 인생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라는 문구를 사용할 수 있기를 바라며 저자는 오늘도 떠난 이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한편으로 고립되고 소외된 이웃이 다시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누군가의 인생을 지우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는 그의 진심이 묵직하고 따뜻하게 마음을 울린다.
“아직 당신이 떠난 자리에 있습니다”
삶을 지우는 자리에 서서 더 나은 마지막을 꿈꾸며
“홀로 쓸쓸히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너무도 많은 요즘이다.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경우도 있다. 자신을 방치할 때 고독사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마지막 순간에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는 오늘의 나에게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인생이 외롭게 마무리되듯, 다정한 인생은 따뜻한 마무리로 이어진다고 나는 믿는다.” _김새별
고독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생겨나고 관련 정책도 마련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고독사 자체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결혼을 기피하는 젊은 1인 가구, 이혼이나 실직으로 주변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중장년층, 점점 ‘우리’를 잃고 개인화되어가는 세태를 돌아보면 마냥 미래를 낙관하기는 쉽지 않은 현실이다.
하지만 그런 마지막을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나 지나온 세월을 갈무리하고, 그동안 맺었던 고마운 인연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단정하게 세상과 이별하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 스스로의 삶을 방치하지 않아야 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안전망이자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한다. 저자의 말마따나 나 자신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에게 조금 더 다정해진다면 외롭고 쓸쓸한 마지막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남겨진 것들은 입 없이도 떠난 이의 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책을 읽다 보면 그 생을 짐작하게 하는 남겨진 것들이 없는 날, 남겨진 것들이 하는 말에 맺히고 응어리진 것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리고 저마다의 마지막을 그려보며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게 된다.
너무 멀지 않은 곳에, 너무 늦지 않은 때에
우리가 함께일 수 있다면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있으랴마는 『남겨진 것들의 기록』에서는 특히나 치료하지 않고 자신을 방치하는 환자, 겉으로는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하지만 집은 쓰레기로 가득 채우고 위태롭게 휘청이는 젊은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은둔 청년에게 마음을 더 많이 쓴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손을 내밀면 충분히 찬란하게 피어날 수 있는 인생이건만, 그들은 위험천만한 환경에 자신을 몰아넣고 사그라지는 생의 기운을 무심히 지켜만 본다. 저자는 그들을 ‘고독사 예정군’이라고 부른다.
사회적으로 ‘고독사 위험군’을 선별해 지원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모든 사람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서 돕기에는 어려움이 있고 그 범주에 들지 않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누구보다 선명하게 목격하고 있는 저자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다. 특히나 자신을 어려운 환경과 고립으로 몰아넣는 이들에게 부록 「유품정리사가 알려주는 자신을 지켜내는 7계명」은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방편이 되어줄 것이다.
인생에도 계절이 있다. 겨울 속에 있다 보면 이 계절이 끝나지 않고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은 생각에 잠기기 쉽지만 분명 이 계절이 지나면 포근한 봄이 찾아온다. 그날이 찾아올 때까지 옷깃을 여미고 주변 사람과 온기를 나누며 버텨내기를 바라는 응원 목소리가 책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생은 산들바람에도 꺾여버릴 만큼 연약하기도 하지만, 혹독한 겨울을 견뎌낼 만큼 강인하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