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과 호란 사이
38년 한국사에서 비극이 반복되는 이유
  • 지은이
  • 발행일
  • 브랜드명
  • 페이지
  • 정가
  • ISBN
  • 정명섭
  • 2019.11.27
  • 추수밭
  • 352쪽
  • 16,000
  • 9791155401576
도서 소개
역사는 과거에 대한 지양 또는 지향이라는 흐름으로 진행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떤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며 그 전후관계를 살피는 시도들은 많았으나 사건과 사건을 연결하는 틈, 사이의 시간 자체에 주목하는 경우는 아직 널리 소개되지 않은 듯하다.『왜란과 호란 사이 38년』에서는 이러한 ‘틈의 역사’에 주목했다. 조선은 국제적인 환란을 경험한 이후 내외적으로 국가를 재건해야 했다. 임진왜란이라는 위기가 끝난 이후 병자호란이라는 위기의 반복 이전까지 태풍의 눈과 같았던 아주 잠깐의 시기 동안 조선은 무슨 선택을 했으며, 어떻게 시간을 보냈고, 궁극적으로는 왜 비극을 반복하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잠잠한 듯 조선의 사회상이 급변한 시기를 재조명한다.
목차

들어가는 글 왜 왜란 다음에 호란을 다시 맞았을까

첫 번째 장 비극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전장의 먼지와 화약 냄새에 익숙해진 소년들

+홍한수전, 첫 번째 선조 28년(1595) 5월, 한양 훈련도감
재해처럼 돌연 들이닥친 난리, 임진왜란│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7년의 고통│“전쟁은 그대들의 몫이 아니니 돌아오라!”│전란에서 소외된 보통사람들│총을 들어야 했던 소년들│막지 못한 전쟁, 막아야 했던 전쟁

두 번째 장 그들이 모이면 천하가 감당하지 못한다: 조선과 명과 왜의 전쟁으로 벌어진 북쪽의 틈

+홍한수전, 두 번째 선조 28년(1595) 12월, 압록강
멧돼지 가죽이라고 불린 변방의 남자│누르하치는 어떻게 동아시아의 패자가 되었을까?│“그들은 치질이고 옴이다!”│조선을 지키는 울타리, 강과 번호│조선의 통제에서 벗어난 여진│결국 무너진 세종의 방어체계

세 번째 장 북쪽에서 부는 검은 바람: 동아시아 패권의 교체와 선택을 강요받게 된 조선
+홍한수전, 세 번째 광해군 11년(1619) 2월 27월, 요동 배갈동령 십리 밖
조선군, 압록강을 건너다│명과 후금 사이에 선 광해군의 선택│재조지은이라는 마법의 주문 또는 저주│동아시아 세대교체의 시작, 사르후 전투│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상과 하│여진의 미래를 엿본 책, 《건주문견록》

네 번째 장 반역과 명분 사이: 의리를 내세운 배신, 인조반정
+홍한수전, 네 번째 광해군 15년(1623) 3월 12일 밤, 한양 창덕궁 앞
같기에 다른 반역과 반정 120 수많은 실수에도 성공한 거사│광해군의 짙고 긴 그림자│“반란이 성공한 것이 아니라 광해군이 실패한 것이다” │뒤집은 자들이 제시한 새로운 길│왕만 바뀌었을 뿐 변하지 않은 조선

다섯 번째 장 가장 아플 때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내다: 반정 이후, 이괄의 난
+홍한수전, 다섯 번째 인조 2년(1624) 1월 24일 평안도 영변
북방을 향한 조선의 사나운 칼│새로운 전술, 다시 새로운 적│역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공신│여진을 상대하려 했던 빠른 칼은 조선으로 향하고│이괄의 압승│다시 한양을 버린 임금│빠른 승리만큼 허무하게 끝난 반란│잃은 것이 너무 컸던 승리│“이제 조선 땅에 싸울 수 있는 장수는 없다”

여섯 번째 장 첫 번째 조짐, 정묘호란: 조선이 흘려보낸 시간과 홍타이지의 등장
+홍한수전, 여섯 번째 인조 5년(1627) 1월 22일 평안도 안주성
새로운 군주 홍타이지가 선택한 희생양, 조선│함락된 안주성, 열려버린 침략의 길│“전쟁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가장 믿어야 할 존재를 의심한 임금│일어나지 않은 의병, 등을 돌린 백성│호란은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용골산성의 전장│의병장을 믿지 못하는 임금

일곱 번째 장 무릎을 꿇어도 죄, 꿇지 않아도 죄: 홍타이지, 황제를 선언하다
+홍한수전, 일곱 번째 인조 11년(1633) 4월 13일 구련성 마타자 인근
전쟁으로 다져진 홍타이지의 시대│물에 약한 뭍의 여진족 232 조선의 골칫덩이, 가도와 모문룡│모문룡은 사라졌어도 여전한 조선의 두통│“조선의 전함이 필요하다”│김여규가 아니라 신달리다! │“조선의 전함은 이제 필요없다” 244 명과 후금 사이에서 균형을 잃고 쓰러진 인조

여덟 번째 장 무너진 동아시아의 균형: 모문룡의 몰락과 공유덕과 경중명의 망명
+홍한수전, 여덟 번째 인조 14년(1636) 4월 11일 심양 황궁
칭기즈칸의 후예를 정복한 후금│버려지는 조선의 시간│마지막 기회를 놓친 조선│읽지 못한 정세, 쌓이는 오해, 들킨 속마음│왜 11월 26일인가?│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결국, 전쟁의 시작

아홉 번째 장 그 후로 38년, 반복되는 비극: 병자호란의 시작
+홍한수전, 아홉 번째 인조 14년(1636) 12월 29일 남한산성
문제 1: 전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한 병력│문제 2: 뒤떨어진 전술│문제 3: 존경받지 못하는 선비│산성으로는 막지 못하는 철기│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한 조선군│그저 흘려보내기만 한 시간│한심하게 갇힌 자와 느긋하게 가둔 자

열 번째 장 예정되었던 슬픈 결말: 삼전도의 굴욕과 병자호란 이후의 조선
+홍한수전, 열 번째 인조 15년(1637) 1월 30일, 삼전도
희망은 그렇게 사라지고│아쉬움을 남긴 작은 승리, 광교산 전투│비굴한 항복이냐 어리석은 죽음이냐│수많은 오판과 희생 끝에 명에서 청으로│반복된 역사, 다시 찾아온 비극 │반복된 비극, 반복되지 않을 수 있었던 비극


나가는 글 비극이 희극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

참고문헌 

책 속으로

조선 후기 시인인 홍세태가 쓴 《김영철전》이라는 전기소설이 있다. 난과 난 사이에 태어나 거친 세월을 살아내야 했던 김영철의 고난과 회한은 연이어 난리를 맞아야 했던 17세기 조선 민중들의 고초와 겹친다. … 김영철이라는 평범한 사람이 한 인간의 삶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의 파란만장한 역정을 겪은 탓은 결코 스스로에게 있지 않다. 그저 그가 살던 나라가 그릇된 선택을 내려 전란에 휩싸였고, 그럼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_들어가는 글 중에서

1594년 《선조실록》에 처음 등장한 아동대는 훈련도감에서 모집했는데, 주로 조총을 다루는 포수로 편성되었다. 나이가 어려도 조총은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아이들이기 때문에 급료로 주는 쌀이 적어 유지가 쉽다는 점도 아동대를 모집하는 데 한몫했다. 이들에게 조총을 가르친 교관은 항왜降倭(조선에 귀순한 일본인)들인 여여문呂汝文과 산소우山所于였다. 약 200명으로 편성된 아동대는 편을 갈라 시험을 쳐서 고과를 매겼다. _전장의 먼지와 화약 냄새에 익숙해진 소년들 중에서

동양재의 얘기를 듣던 홍한수는 문득 훈련도감의 늙은 포수에게 들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어느 해인가 왜국 사절단이 길가에 도열한 병사들의 창을 보고 너무 짧아서 쓸모가 없어 보인다고 비아냥거렸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긴 창과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이 쳐들어왔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누르하치의 여진족들은 조선을 전혀 겁내지 않았다. _ 홍한수전, 두 번째 선조 28년(1595) 12월, 압록강 중에서

선조는 자신의 훼손된 권력을 지키기 위해 명을 추켜세우고 의병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그러면서 관념적이었던 사대관계는 현실적이고 동시에 맹목적으로 변해갔다. 명의 지원병 요청을 둘러싼 광해군과 대신들 간의 갈등은 정국을 주도하던 대북 내부의 분열을 불러왔다. 가뜩이나 소수이며 과격파였던 대북의 분열은 정권을 지탱할 마지막 기둥을 무너뜨렸다. _재조지은이라는 마법의 주문 또는 저주 중에서

광해군은 국익에 따라 냉철하게 선택해야 할 국정 방향을 설득하는 대신 조롱과 비아냥으로만 일관했다. 명분을 앞세우며 자신에게 반대하는 대신들을 백면서생이라고 조롱했고, 사르후 전투에 대한 결과를 듣고 나서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비아냥거렸다. 대신들을 함께 국정을 논의할 파트너로 보지 않고 무지몽매한 존재들로 매도하며 냉소로 일관한 것이다. 후금의 세력이 강성해지고 명의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게 되면 천하의 주인이 바뀔지 모른다고 내다본 탁월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그러한 선견지명에 동조하는 세력을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다. 광해군이 가진 이러한 한계는 집권세력인 대북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면서 인조반정으로 이어진다._“반란이 성공한 것이 아니라 광해군이 실패한 것이다” 중에서

술잔을 내려놓은 여여문이 고개를 저었다.
“조선은 늘 자신들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임진년에 여기로 건너왔을 때 함경도 쪽에서 여진족과 싸운 적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도 감당하기 힘든 자들이다. … 조선은 임진년 때만 생각해서 전쟁이 나면 높은 산속의 성에 틀어박혀서 싸울 생각만 하더구나. 왜군이었다면 그 방법이 먹히겠지만 후금군에게는 소용이 없다.”
“왜 그렇습니까?”
“왜군의 목표는 땅을 빼앗고 군량을 얻는 것이었다. 그래서 요충지를 점령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했다. 하지만 후금은 그러지 않아. 아마 조선이 산성에 틀어박히면 그냥 가던 길을 갈 거다.” _홍한수전, 다섯 번째 인조 2년(1624) 1월 24일 평안도 영변 중에서

의병장 조경남趙慶男은 이때의 분위기를 자신의 저서인 《속잡록고서續雜錄》에 이렇게 남겨놓았다. “의병을 일으키려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비난을 하거나 욕설을 퍼붓고 화를 내기까지 한다. 그리고 의병에 가담하지 않으려고 온갖 핑계를 대고 한 사람도 나서지 않으니, 인심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나라의 국운이 다한 것이다.” _일어나지 않은 의병, 등을 돌린 백성 중에서

“나라가 백성을 버린다면 백성도 나라를 버릴 수 있지요.”
위험한 발언이었지만 어차피 죽음을 각오했기에 홍한수는 내키는 대로 말했다. 그의 말을 듣던 남이흥이 격정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우리 때문이란 말인가?”
가족들과 제대로 인사도 못 나누고 안주성으로 왔던 홍한수는 그래도 안주목사가 남이흥이라는 사실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그는 제대로 습진을 하지도 않고, 사소한 일에 부하들을 가혹하게 대했다. 홍한수는 남이흥이 길길이 날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남이흥이 탁한 목소리로 답했다.
“나라고, 나라고 왜 그러고 싶지 않았겠나.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습진을 하려고 하면 조정과 권신들이 보낸 기찰꾼들이 달라붙었네. 그러면 얼마 후에 조정에서 함부로 군대를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왔고 말이야.”
그의 대답을 듣고 어이가 없어진 홍한수가 물었다.
“변방의 장수가 습진을 하는 걸 왜 조정에서 만류합니까?”
“이괄의 난 때문일세. 그 이후에는 장수가 조금만 움직여도 의심하지.”
“목사께서는 공신이지 않습니까?”
“나 또한 이괄과 같은 무장이지.”_인조 5년(1627) 1월 22일 평안도 안주성 중에서

임진왜란을 경험하며 조선은 활을 버리고 조총을 쓰기 시작했고, 30여 년이 지난 병자호란 무렵에는 조총의 품질이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조총은 기병이나 궁수에 비해서 양성하는 비용이 적게 들었기 때문에 임진왜란 이후 재정난에 시달리던 조선에 여러 모로 적합했다. 특히 별다른 훈련을 하지 못하는 속오군에게 적합한 무기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 시간 동안 상대해야 할 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여진족은 왜와 여러 모로 달랐다._문제 2: 시대에 뒤떨어진 전술 중에서

인조는 완벽한 친청파로 변신한다. 그리고 어리석은 선비들이 나라를 망쳤다고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나라를 고통으로 빠트린 이들은 다름 아닌 임금과 정책을 결정한 대신들이었다. 그럼에도 나라가 비극을 맞은 데 대해 책임지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의주부윤은 37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온 안단을 묶어서 청으로 돌려보낸다. 외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결박된 채 청으로 끌려가던 안단은 조국이 자신을 죽을 곳으로 몰아넣는다고 울부짖었다. 환향녀라고 불리면서 평생을 손가락질 받은 여인들의 사연은 아예 기록조차 남지 않았다. 다만 절개를 잃었으면서도 죽지 않고 부끄럽게도 살아 돌아왔다는 사관의 거친 붓놀림 속에 가느다랗게 흔적만 남길 뿐이다. _반복된 비극, 반복되지 않을 수 있었던 비극 중에서

김영철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김영철의 사연은 당시 조선인들에게 여상했다. 이들 수많은 김영철들과 홍한수들은 잠시간의 안식도 없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휘말려 평생을 휘둘렸다. 그렇게 행복해지는 것이 법도에 어긋나는 시절을 견디면서 아픔을 습관처럼 겪었다. 그리고 김영철의 비극적인 삶은 병자호란 때 민초들에서 끝나지 않고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다. _나가는 글 중에서  

저자 소개

정명섭

1973년생. 대기업 회사원과 바리스타를 거쳐 지금은 역사교양서, 장르소설, 청소년도서를 넘나드는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햇빛처럼 선명하게 기록된 역사 속에서 그 빛을 받아 밤을 비추는 달과 같은 이야기를 찾는다. 그래서 우리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사실을 발굴하거나 익숙한 것들에서 낯선 모습을 발견하는 데 관심이 많다. 주요 저서로 역사 분야에서는 《그래서 나는 조선을 버렸다》, 《일제의 흔적을 걷다》, 《조선변호사 왕실소송사건》, 《조선전쟁 생중계》, 《조선직업실록》, 《조선의 명탐정들》, 《조선백성실록》, 《조선의 엔터테이너》, 《스승을 죽인 제자들》 등이 있다. 장르소설 분야에서는 《달이 부서진 밤》, 《한성 프리메이슨》, 《셜록 홈스 과학수사 클럽》, 《살아서 가야 한다》, 《별세계 사건부》, 《좀비 제너레이션》, 《바실라》 등이 있다. 청소년도서로는 《유품정리사》, 《로봇 중독》, 《미스 손탁》, 《남산골 두 기자》, 《사라진 조우관》, 《직지를 찍는 아이, 아로》, 《불 꺼진 아파트의 아이들》, 《이웃집 구미호》, 《나의 서울대 합격 수기》 등이 있다. 

출판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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